[데스크라인]유닉스에 죄를 묻는 ‘KB’

[데스크라인]유닉스에 죄를 묻는 ‘KB’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다. 11개 계열사, 임직원 2만5000여명,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최고의 금융그룹 KB를 백척간두에 내 몬 원인제공자가 그깟(?) ‘유닉스’라니.

주전산시스템 교체 방식을 놓고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 간 벌어진 ‘내홍’을 금융당국이 ‘경징계’로 봉합하려했으나 징계 당사자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사건 조사를 검찰에 의뢰하면서 다시 불을 질렀다. 당사자는 또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방식을 바꾸는 데 참여했던 IT 담당자를 해임했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금융권 전반에서 격앙된 반응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물론이고 금융권 종사자, KB 계열사 임직원들까지 혀를 내두른다. 이 때문에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들을 다시 혼줄 낼 방법을 찾느라 고민에 빠졌고, KB 임직원들은 의도와 향배를 알아내느라 일손을 또 놓았다.

도대체 진짜 이유가 뭐고, 범인은 누구일까.

국민은행이 검찰에 낸 고소장에는 피의자들의 혐의가 이렇게 돼 있다. 유닉스로 주전산시스템을 전환하기 위해 실시했던 벤치마크테스트(BMT)에서 1700건이나 오류가 발생했는데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교체를 강행하려했다.

차분히 한번 되짚어보자. IT업계에서는 주전산시스템을 유닉스로 바꾸는 과정을 ‘다운사이징’이라고 부른다.

고가의 거대한 시스템(메인프레임)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가벼운 시스템(유닉스)으로 교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다운사이징을 KB국민은행이 처음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KB보다 하루 평균 거래량이 1.5~2배나 많은 NH농협도 이미 유닉스로 바꿔서 안정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도 모두 유닉스로 바꿨다.

BMT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유닉스에 있다고 하기에는 이미 시장에서 검증이 끝났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테스트 장비를 구성했던 소프트웨어(SW) 오류나 조작 실수 등 다른 기술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KB에 앞서 다운사이징을 실시했던 금융사 IT 담당자들은 모두 “1700건이라는 숫자는 미미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이 프런티어 정신을 발휘해 유닉스를 도입하려했던 7~8년 전에는 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장비의 성능을 높이려면 초고속 프로세서와 대용량 스토리지 등 최고가 부품으로 구성하면 된다. 그런데 거두절미하고 ‘유닉스 탓’으로 몰아간다.

또 다른 문제는 KB국민은행은 아직 유닉스로 주전산시스템을 교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년여간 BMT를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찰을 완료하지 않았다.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BMT에 참여했던 SK C&C, HP, 오라클 등 IT기업들이 억울해하는 이유다. 이 BMT에는 원인 제공자인 IBM도 유닉스 기반 시스템으로 참여했다.

결국 범죄를 모의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은 상황인데 범죄자가 돼 중복으로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위험상황에 대한 내부 보고에 소홀했다는 책임을 물어 인사권자가 내부적으로 징계를 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금융당국이나 검찰까지 가서 입증해야 할 사안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번 사태는 ‘몽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해사행위가 될 수 있다. 피해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금감원은 다시 한 번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

정지연 경제금융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