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방향 잃은 원전 정책, 결국은 신뢰다

‘원전’, 대한민국에서는 참 불편한 주제다. 항상 논쟁의 중심에 있을 정도로 관심이 높지만 누구도 딱 부러진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정부와 정치권, 전문가, 시민단체 심지어 일반인까지 시각과 인식차가 제각각이다. 가장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게 바로 원전 이슈다. 한쪽에서는 ‘원전 르네상스’를 외치고 반대편에서는 ‘원전 제로’를 주장하는 게 현주소다.

[데스크라인]방향 잃은 원전 정책, 결국은 신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총론과 각론 모두 십인십색이다. 현안마다 벌집 쑤신 듯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논란은 무성한데 정작 해법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발등의 불’로 떨어진 원전 이슈가 산적함에도 변죽만 울리다 사그라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당장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처리’ 문제가 그렇다. 앞으로 2년 후인 2016년이면 고리 원전의 핵연료 저장소가 가득 찬다. 이를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다른 원전도 사용후 핵연료 가 포화될 예정이다. 조밀화 등으로 시기를 늦춘다 해도 10년 후면 더 이상 보관할 곳이 없다. 중간 저장소든, 영구 처분이든 지금 해결책이 나와도 준비가 늦은 상황인데 기본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출범한 공론화위원회 활동이 불과 넉 달 남았지만 최소한의 국민 여론도 수렴하지 못했다.

폐로는 어떤가. 가동 중인 원전 23기 중 10기가 2020년대에 설계 수명이 끝난다. 하지만 원전 폐로에 관한 정확한 정의도 수립하지 못했다. 법적인 근거부터 기술, 인력, 처리 방식까지 모든 게 오리무중이다. 다른 나라는 폐로 시대를 맞아 안전 측면뿐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데 우리는 수수방관 시간만 허비 중이다. 이뿐 아니다. 고리와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삼척과 영덕 신규 원전 건설 등도 이미 해묵은 이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따져 보면 단순한 이유다. 결국 국민이 원전 정책을 믿지 못하고 정부는 정책 후폭풍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불신은 나름 배경이 있다. 주민 동의 없이 핵연료 저장소를 지으려 했던 안면도 사태를 시작으로 유혈 사태까지 벌어진 굴업도, 부안 방폐장 부지 선전 등 원전 정책과 관련해서는 크고 작은 잡음이 과거부터 끊임없이 이어졌다. 여기에 사안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갈등을 부채질한 측면도 컸다. ‘민란’ 수준의 주민 반대에 시달리면서 원전 정책은 이미 골치 아픈 계륵으로 전락했다. 결국 정책은 방향타를 잃었고 정부는 무기력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해법은 신뢰 회복이다. 믿음을 주는 일이 급선무다. 정책 신뢰감을 회복하는 게 가장 급하다. 믿음을 얻어야 정부 정책도 자신감이 생기는 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확하고 진솔하게 국민을 만나야 한다. 모든 사안에 투명한 의사소통은 기본이다. 싱크대에 물이 넘치면 제일 먼저 수도꼭지부터 잠가야 한다. 나머지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신뢰라는 수도꼭지가 제일 화급한데 다른 데서 해법을 찾는다면 모두 시간낭비다. 공자의 말처럼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