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폭우로 멈춰선 고리원전 2호기 현장을 가다

지난달 25일 부산에 물난리가 났다. 이날 14시부터 15시까지 한 시간 동안 무려 130㎜의 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시간당 최대 강수량인 63.5㎜의 두 배가 넘는 물 폭탄이 터진 것이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15시 40분 전력을 생산하는 터빈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취수 건물이 침수됐다. 원전 측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터빈을 세웠다. 비 때문에 원전이 정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신선 고리원자력본부 기술실장이 터빈용 취수 건물 내에서 침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신선 고리원자력본부 기술실장이 터빈용 취수 건물 내에서 침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고리원전 2호기 침수 사건현장을 직접 찾았다. 원전 들어가는 길부터 수마(水磨)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인도 위까지 물로 덮었던 모양이다. 고리원전 내부에 발을 디뎠다. 바닥에 깔린 누런 흙과 물이 찼던 자국을 보니 원전 내부 상황도 바깥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제가 된 취수 건물은 원전에서 50m 이상 바닷가 쪽으로 떨어져 있다. 헌데 취수 건물이 하나가 아니다. 화력발전소의 경우 취수구가 하나지만 원전은 두 곳이란다. 하나는 원자로를 식히기 위한 냉각수를 끌어들이고 다른 하나는 터빈을 돌린 스팀을 냉각하는 데 쓰인다고 고리원전 측은 설명했다. 원전 안전을 위해 따로 마련한 것이다.

물론 침수가 된 곳은 터빈용 취수 건물이다. 해당 건물과 원전 안전은 별개인 셈이다. 취수 건물 내 냉각용 순환수 펌프가 가동 중단됐다고 원자로 폭발 문제를 들먹였던 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모두가 무지(無知)에서 비롯됐다. 안내를 받아 2호기 터빈용 취수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바닷물을 끌어들여야 하니 지하에 지었다. 해안 쪽이어서 건물 위치도 가장 낮은데다 지하에 있으니 구조적으로 물이 쏠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지하로 내려가니 먼저 순환수 펌프용 제어반실이 있다. 순환수 펌프를 제어하는 만큼 여기서는 주요 설비다. 약간의 물기만 남아있을 뿐 배수 작업을 끝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말해주듯 제어반 아래쪽과 벽 둘레에 물이 찼던 흔적이 선명히 남았다. 바닥에서 50㎝는 넘게 차올랐다고 이신선 고리원전 기술실장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은 침수된 모든 설비를 뜯어낸 상태다. 완전 분해한 후 교체 작업 중이라고 한다.

문을 열고 제어반실을 나서자 스크린 세척 펌프와 순환수 펌프, 임시 배수펌프, 염소 주입펌프가 잇달아 설치돼 있다. 순환수 펌프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비를 위해 철거해 놓았다. 순환수 펌프 자체는 밀폐 타입이라 침수와 상관없지만 앞에 있는 펌프 압력 스위치 패널이 물에 잠기면서 가동이 중지된 것이었다.

침수 원인은 의외로 쉽게 찾았다. 순환수 펌프 오른쪽 위에 있는 전선관으로 빗물이 흘러들어온 것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선관이 하수구와 같은 형태의 관로에 설치돼 있는데 배수량보다 강수량이 많아 뚫려있는 전선관으로 넘쳤다. 전선관만 18개니 지하 공간을 물로 채우는 것은 순식간이었을 듯하다. 지하실 특성상 임시 배수펌프를 갖췄지만 들어찬 물을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자리를 옮겨 원자로 냉각용 취수 건물도 들렀다. 순환수 펌프만 지하에 있을 뿐 제어반을 비롯한 주요 설비를 지상에 뒀다. 원전 안전설비로 분류돼 안전 등급부터 다르다. 최고 등급인 ‘Q’다. 건물 내 모든 부위를 밀폐했다. 전선관도 물샐 틈 없이 막고 아예 땅에 묻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입문마저 방수문으로 새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바깥에서는 침수 원인인 전선관을 밀폐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콘크리트 재질의 뚜껑을 다 들어내고 전선관을 일일이 막아야 한다. 고리원전 측에서는 재발 방지를 위해 물에 약한 제어반을 지상으로 올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신선 실장은 “해당 건물이 핵심설비는 아니지만 유사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다른 원전의 취수 건물도 점검할 것”이라며 “31일까지 침수된 설비 교체를 끝내고 재가동 준비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장(부산)=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