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ICT를 활용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면

[신화수 칼럼]ICT를 활용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면

운전을 잘하는 한국인이 미국 운전면허시험, 그것도 주행시험에서 곧잘 떨어진다. 특히 정지 때 그렇다. 분명 멈췄는데 불합격이다. ‘진행하는 정지(Ongoing stop)’라는 이유다. 몸이 앞으로 쏠릴 정도로 세워야 붙는다. 미국은 면허시험뿐만 아니라 일상 운전에서도 정지를 중시한다. 사람이 없어도 정지 표시판이 나오면 무조건 멈췄다가 가야 한다. 앞 통학버스가 멈추면 같이 서야지 추월하면 안 된다. 범칙금이 세니 규칙을 어기는 운전자가 거의 없다.

이 정지 습관은 인명사고를 줄일 뿐만 아니라 교통 흐름과 비용 절감까지 도움이 된다. 교차로 신호등이 고장 났다. 차들이 일단 서고 먼저 선 순서대로 간다. 경찰이 없어도 다른 차 운전자 눈총을 받으니 규칙을 잘 따른다. 정체도 없다. 좁은 길에 비싼 신호등을 설치할 필요도 사라진다. 무조건 딱지를 떼일 소화전 옆에 아예 차를 세우지 않는다. 일상에 스민 안전의식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보낸 정지 신호다. 일단 멈추고 앞과 뒤, 옆까지 살핀 다음 가라는 안전운전 메시지다. 그래도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 ‘뭐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다. 대응은커녕 원인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거리 한복판에 ‘싱크 홀’이 잇따라 생겼는데 전문가 의견이 계속 엇갈린다. 데이터는 없고, 주장만 있다. 큰 구멍보다 이런 모습이 더 불안하다.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있다. 보험 통계를 분석하니 대형사고 이전에 이를 예고한 29회의 소형사고, 300번의 징후가 있더라는 법칙이다. 이를 적용했다면 웬만한 사고를 막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심지어 9·11 테러도 해당했다. 그러나 관련 정보는 동떨어져 관리됐다. 일부는 숨겨졌다. 미리 알아챌 수 없었다. 미 정부가 ‘국토안보부’를 만든 이유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안전처’를 만든다. 미국보다 안전을 더 중시한 셈이다. 10년간 방치했던 재난망 사업도 재개한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안전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 29일 ICT대연합 주최로 열린 ‘재난 대응 토론회’에서 갖가지 ICT 활용법이 나왔다. 외국은 우리보다 인프라가 좋지 않은데도 ICT를 안전에 기발하게 활용했다. 무엇보다 정보를 민간과 공유해 대안을 찾는 노력이 돋보였다. 정부는 지역별 범죄, 홍수 등의 데이터를 깨알같이 제공하고 민간은 창의적 대안을 만든다.

우리 정부도 공공데이터를 적극 개방한다. 그러나 집값과 이미지 하락을 걱정할 지역주민 반발을 예상해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반발은 외국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공개가 해당 지역 개선 계기로도 작용하자 잠잠해졌다.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선 ICT 인프라와 보급률을 자랑하는 한국이다. 사물인터넷(IoT), 소셜네트워크까지 활용하면 세계 최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다. 정작 우리 사회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됐다.

지난 30일 운전면허 시험장마다 9월부터 까다로워질 필기시험을 피하려는 응시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안전 강화 취지는 좋지만 ‘책으로만 배운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주행시험은 여전히 운전능력을 중시한다.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정지 한번 확실히 하지 못하면 떨어뜨려야 운전자 의식이 바뀐다. 안전에 대한 당국자 인식과 접근방식은 여전히 ‘온고잉 스톱’이다. 이것부터 확 뜯어고칠 ICT 활용법이라도 있다면 찾고 싶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