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장비업계, 1순위 고객 중국을 잡아라

국내 제조업 경기가 침체되면서 부품·장비 업계가 영업의 축을 점차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 심지어 우선 중국 시장부터 겨냥해 개발하거나 출시하는 제품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 레퍼런스를 최우선으로 했던 중국 업체의 구매 형태도 바뀌면서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업체들이 최근 신기술을 적극 채택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부품·장비 업계가 영업 역량을 중국을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에스엔유프리시젼은 중국 시장에서 양산용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가 늘어나자 관련 사업의 첫 타깃을 중국으로 잡았다. 앞서 국내 디스플레이업체가 연구개발(R&D) 단계에서는 국산 장비를 사용했지만 정작 양산용으로는 일본 제품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 전략이 성공한 덕분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증착 장비 수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첫 레퍼런스가 중국에서 나온 이후 AM OLED 투자에 나선 중국 후발 주자들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BOE와 비저녹스에 추가로 공급하게 된 배경이다.

10인치 이상 대면적 메탈메시 터치스크린패널(TSP) 사업에 뛰어든 금호전기 역시 중국을 최대 시장으로 꼽고 있다. 올해 초 시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장비까지 직접 개발해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면서 역시 중국 업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운아나텍은 신제품을 출시할 때 여느 팹리스(반도체설계전문회사)들과 달리 ‘국내 대기업 우선’이라는 전략을 버린 지 오래다. 먼저 국내에 공급하고 이를 확대하기 위해 중국으로 진출하는 관행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특히 중저가용에도 자동초점(AF) 칩이 채택되면서 급성장하는 중국은 더 없이 중요한 시장이다. 동운아나텍은 중국 지사도 확대하면서 현지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첫 레퍼런스가 중국에서 나오는 데에는 현지 시장에 대한 자신감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은 한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중국 업체들도 한국 시장 진출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따졌다. 과거에는 독자 노하우가 없어 라인을 베끼는 데 급급했던 모양새였다. 하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고 기술력도 축적되면서 구매 형태가 달라졌다. 더욱이 기술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지 않으면서도 후발주자로서 원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검토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 협력업체의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어디에 공급했었냐’부터 묻던 중국 업체들이 새로운 기술에 눈을 돌리고 있다”며 “대기업의 1~2차 협력사 지위에 안주하던 국내 부품·장비 업체들의 영업 전략도 바뀌는 추세”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