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야기가 경쟁력이다

[기자수첩]이야기가 경쟁력이다

한 청년이 전라북도 어느 시골마을 양조장 술맛에 반했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에게 한두 병 파는 소박한 장사만 하던 양조장이다. 술맛은 내로라하는 대기업 전통주보다 훌륭했지만 욕심이 적었고 마케팅 능력은 아예 없었다. 술병 디자인, 술 이름 모두 조악했다.

사업가였던 청년은 이렇게 맛 좋은 술이 작은 마을에서만 팔리는 게 안타까워 서울로 가져왔다. 세련된 병에 술을 담았고 오직 ‘홍대’에서만 판다는 이야기(스토리)를 입혔다. 이름은 ‘살롱 드 홍대’로 지었다.

지금까지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술은 많이 있었지만 문화를 담은 술은 없었다. 홍대는 젊은이에게 단순한 지역적 공간이 아니다. 공공연히 ‘홍대 문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관광객에게도 서울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다.

홍대에서만 파는 이 술은 입소문을 타고 많은 손님을 모으고 있다. 시골마을에서 밭매기를 마친 할아버지가 천 원짜리 몇 장으로 마셨던 보잘것없던 술이 이야기를 담아 지역문화를 상징하며 탈바꿈했다. 가격을 5배 이상 더 받아도 잘 팔렸다.

‘살롱 드 홍대’는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평범함을 특별하게 재탄생시킨다. 사례는 해외에도 많다.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이 유럽 길거리에 가면 꼭 찾는 ‘뱅쇼’라는 끓인 와인이 있다. 뱅쇼를 마시러 유럽여행을 간다는 사람도 많다. 사실 이 술은 저가 포도주를 집에서 끓여 먹어도 맛이 똑같다.

그러나 많은 관광객은 단지 뱅쇼를 마시러 유럽에 가는 게 아니다. 한 잔의 술에 담긴 유럽의 전통 이야기와 문화를 느끼러 간다.

제조 기업에서도 제품에 이야기를 넣는 작업이 한창이다. 물건을 많이 팔려는 상술이 아니라 경쟁력 그 자체다. 이제 제품의 가치와 가격을 곱절이나 뛰게 할 방법은 성능 좋은 부품만이 아니다.

상품이 가진 재미있는 이야기, 제품이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심리적 가치가 경쟁력인 시대다. 전라북도에서 몇 천원에 팔리던 술이 홍대문화를 만나 5배의 가격으로 불티나게 팔리는 ‘살롱 드 홍대’의 의미가 곧 산업이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