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우물안 개구리` 금융산업

[신화수 칼럼]`우물안 개구리` 금융산업

한국 금융산업 경쟁력이 말라위, 우간다 급이라는 세계경제포럼(WEF) 평가에 ‘설마’ 했다. KB금융 사태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해외 불법 대출부터 고객정보 유출, 전산 교체 내분까지 1년 새 만신창이가 된 이 금융사 수뇌부 징계를 놓고 금융당국은 헛발질만 거듭했다. 권위 실추도 모자라 존재 의미까지 의문을 받는다.

정부는 최고경영자(CEO) 임면권을 비롯한 규제와 감독권으로 금융사를 쥐고 흔든다. ‘주인 없는 금융사’만 있고 ‘낙하산’ ‘줄서기’가 판을 친다. 연출자인 금융당국이 직접 출연까지 한 KB사태는 가히 ‘막장 드라마’다. 관치금융에 멍든 금융산업 민낯이다.

관치금융을 깨지 않고 금융산업 경쟁력 회복은 없다. 그런데 50년 이상 굳은 ‘콘크리트’가 너무 단단하다. 스스로 내리치지 않으니 해머가 엉뚱한 곳에서 나온다. 정보통신기술(ICT)이다.

애플은 지난주 ‘아이폰6’를 발표했다. 큰 화면, 새 성능보다 모바일결제서비스 ‘애플페이’가 돋보였다. ‘구글월렛’과 달리 카드, 금융사, 프랜차이즈업체까지 망라한 생태계를 제시했다. 오프라인 결제는 시일이 걸리겠지만 온라인·모바일 결제 시장에 큰 충격을 예고했다. 뒤늦게 나온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듯이 애플페이도 스마트금융 시대를 열 것이다.

애플, 구글뿐만이 아니다. 이베이(페이팔), 아마존(아마존페인먼트), 알리바바(알리페이) 등 온라인 유통망을 장악한 업체까지 진을 쳤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도 가세한다. 이들이 결제·송금 시장만 노리리라 본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예금, 대출, 투자 등 전통 금융 영역까지 넘본다. 금융상품을 파는 알리바바가 그 속내를 드러냈다. 외국에 인터넷·모바일 전문 은행까지 등장했다. 기술업체들이 머잖아 금융서비스 주도권을 가져갈 것이다.

금융산업계는 정작 이런 위협에 둔감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금융사업 허가권을 쥔 정부가 알아서 울타리를 쳐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착각이다. 일시적으로 가능하겠지만 영원히 막을 수 없다. 이미 둑은 터졌다.

금융위원회가 내국인 영업 금지를 조건으로 알리페이 진입을 허용했다. 아마도 기존 전자금융 규제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걸로 막을 수 있을까. 이른바 ‘직구’로 상품 국경까지 사라진 세상이다. ‘페이팔’로 직원 월급을 주며 사무실 하나 없이 다국적 기업을 운영하는 세상이다.

금융은 결국 돈이 오가는 길이다. 더 빠르고 수수료까지 적은 디지털금융이란 새 길이 나면 더 많은 사람이 찾게 돼 있다. 약점이라는 보안도 어쩌면 기술발전 덕분에 되레 강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술업체는 금융사보다 훨씬 많은 고객을, 그것도 개별 소비행태까지 속속들이 파악한 채 만난다.

정부가 안팎의 압력에 밀려 디지털금융 규제를 풀기 전에 금융사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시장을 죄다 기술업체에 빼앗길 판이다.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관치금융이란 후진적 행태에 머무니 한심하다. 그 끝자락을 보인 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다.

금융당국과 금융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할 일이 너무 많지만 당장 서두를 일이 하나 있다. 금융과 기술 융합을 잘 아는 전문가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데려오는 일이다. 이들이 획기적 돌파구를 제시하지 못할 수 있어도 최소한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려줄 수 있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