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98>IT APEC 정상회의

“원더풀, 원더풀.”

2005년 11월 18일 저녁 7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1차 정상회의를 마친 21개국 정상은 만찬에 앞서 부산 벡스코 글래스홀 제2 전시홀에 마련된 IT전시관에서 첨단정보기술을 체험하면서 연신 “IT코리아 원더풀”을 연발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2005년 11월 18일 오후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 내외를 IT전시관으로 안내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제공>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2005년 11월 18일 오후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 내외를 IT전시관으로 안내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제공>

IT전시관 입구에는 IT 조형물인 솟을대문과 청사초롱이 설치돼 한국의 전통미를 자랑했다. 입장하는 정상들이 잠시 쉬는 대기실에는 전계발광소자를 이용해 수묵화 효과를 낸 디지털 병풍을 설치해 전통과 기술이 조화를 이뤘다.

정상들은 2분 간격으로 IT전시관으로 입장했다. 만찬장은 IT전시관을 거쳐 입장하도록 설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시관 입구에서 각국 정상 내외를 영접했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하이라이트 존에서 도착한 정상들을 IT전시장으로 안내했다. 정상들이 입장할 때는 모자이크셀 프로젝션을 설치해 해당 정상의 얼굴 영상을 상영했다.

정상들은 8개의 주제관과 4개 기업관 등 전시장을 관람한 뒤 중앙 VIP 라운지에 조성된 ‘디지털 연못’에서 휴식을 취하며 환담을 나눴다.

IT전시관은 6000여㎡(1815평)의 공간에 정통부의 하이라이트존을 비롯해 u포트관(해양수산부·부산시), 이러닝관(산업자원부·교육과학기술부), e헬스관(산업자원부), 로봇관(산업자원부), 문화콘텐츠관(문화체육관광부), 전자무역관(산업자원부), 전자정부관(행정자치부) 등과 4개 기업관(삼성전자·LG전자·KT·SK텔레콤)으로 나눠 설치했다.

정상들은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와이브로와 위성DMB, 세계 최대인 102인치 PDP, 말하는 로봇 등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상들은 첨단정보기술을 시연해 보면서 “원더풀” “판타스틱”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특히 로봇전시관에서 인간형 로봇과 자이툰 부대 파견 로봇 등을 둘러보고 한국의 로봇기술 발전에 감탄했다.

정상들은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닮은 로봇 ‘앨버트 휴보’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정상들은 앨버트 휴보와 악수를 하며 파안대소(破顔大笑)하기도 했다.

알버트 휴보는 살아 있는 아이슈타인이었다. 휴보는 30여개의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한국 전통 예법으로 정상들에게 환영인사를 건넸다.

“세계 정상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앨버트 휴보입니다. 2005년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 내외는 휴보의 인사에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부시 대통령은 휴보를 보고 “진짜 사람 같다”며 휴보와 악수했다.

부시 대통령은 와이브로와 위성DMB, 102인치 PDP를 보고는 “환상적”이라고 칭찬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휴보를 보고 “정말 멋지다”며 “만지면 안 된다”는 오준호 KAIST 교수(현 대외부총장)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휴보의 피부를 만져 보며 즐거워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옆에 있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진짜 사람같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진대제 장관의 회고.

“정상이 입장하면 인사하고 전시관으로 안내했는데 정상들은 IT전시관을 관람하면서 ‘원더풀’을 연발했어요. 특히 입장할 때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것을 보고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번 IT전시회는 한국의 대표 브랜드가 ‘IT강국’임을 세계 정상들에게 인식시키는 자리였습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와이브로를 직접 시연해보며 “놀랍다”고 말했다.

탁신 태국 총리는 이러닝 부스에서 미래형 교육시스템을 둘러보며 “태국에서 교육·학습시스템 개선 사업을 아웃소싱할 생각인데 한국 교육부에 문의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은 “미래 교육시스템으로 재택교육도 가능하다”고 하자 “그럼 학교에 안 가고 집에서 놀아도 되느냐”고 농담하기도 했다.

도널드 창 홍콩 행정장관은 정상 관람 하루 전인 17일 별도 시간을 내 IT전시관을 방문해 외이브로와 위성DMB 등 각종 첨단 IT를 시연하고 체험했다.

APEC 정상회의는 ‘IT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세계에 유감없이 과시하는 IT APEC이었다. IT로 뽐낸 한국의 디지털 빛이었다.

각국 정상은 당초 IT전시관을 20분간 관람할 예정이었지만 40분을 넘겼다. 이로 인해 만찬시간이 늦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첨단 IT가 각국 정상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2005 APEC 정상회의는 과거 회의와는 확연히 달랐다.

먼저 APEC 정상회의 사상 처음으로 ‘IT전시회’라는 특별한 행사를 동시에 개최했다. 보통 주최국은 자국 전통문화를 소개했으나 한국은 IT강국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와이브로와 위성DMB를 시범서비스해 각국 정상의 탄성을 자아냈다. KT와 티유미디어, SK텔레콤은 부산 해운대 벡스코와 동백섬의 누리마루 등에 기지국과 중계기를 설치했다. 이어 각국 정상과 대표단, 기업인, 취재단 등에게 PDA와 태블릿PC, 노트북 등을 제공해 와이브로와 위성DMB를 체험하도록 했다. 이들은 이동 중에도 인터넷 접속, 정보 검색, 뉴스 시청, 영상회의를 할 수 있었다.

각국 정상의 차량에는 와이브로와 위성DMB를 설치했다. 정상들이 묵는 호텔방에는 국산 DTV를 설치했다. 출입도 전자태그 시스템을 적용했다.

정상회의도 첨단전산회의 시스템을 구축해 종이 없는 회의로 진행했다. 각종 뉴스도 실시간으로 정상들에게 제공했다.

각국 정상을 깜짝 놀라게 한 와이브로는 당시에는 한국 기술신화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주축으로 삼성전자, KT, SK텔레콤 등이 2002년 10월 세계 최초로 공동 개발한 기술이다. 이어 2004년 12월 13일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와이브로라는 작명은 진제대 장관의 작품이다. 무선(wireless)과 광대역(broadband)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인 ‘와이브로(wibro)’로 이름지었다.

정통부는 2005년 1월 20일 와이브로사업자로 KT와 SK텔레콤, 하나로텔레콤을 선정했다.

정통부는 APEC 정상회의 개막 전날인 11월 14일 저녁 6시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KT의 ‘APEC 와이브로 시연 개통식’을 가졌다.

개통식에는 진대제 정통부 장관과 남중수 KT 사장(현 대림대 총장), 변재일 의원(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김희정 의원(현 여성가족부 장관) 등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 경실련, 모바일사용자연합대표 등 시민단체와 일본 NTT도코모의 마사유키 히라타 대표이사 겸 부사장 등 국내외 IT 분야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했다.

진대제 장관의 증언.

“당시 와이브로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대단했습니다. 2005년 10월 한국에 온 모레노 미주개발은행 총재는 와이브로 시연을 보고는 ‘IT 혁명’이라고 극찬하면서 ‘중남미에 자신들이 돈을 다 대 와이브로를 깔겠다. 한국이 적극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사업은 나중에 흐지부지되고 말아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듬해인 2006년 6월 30일부터 KT와 SK텔레콤이 그동안의 시범서비스를 마치고 세계 최초로 상용서비스에 돌입했다.

2007년 10월 18일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스위스 제네바 국제회의센터에서 열린 전파총회 본회의에서 와이브로를 3G 이동통신 기술 중 여섯 번째 국제표준으로 승인했다.

우리가 개발한 토중 와이브로가 국제표준으로 등록한 일은 이동통신 표준화 역사에서 이정표를 마련한 쾌거였다.

APEC 정상회의 준비는 처음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단장인 준비기획단에서 총괄했다.

기획단은 11개 부처 22명으로 구성해 2003년 9월 19일 출범했다. 그러나 IT전시관 설치와 운영, IT조형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자 정부는 2005년 7월 27일 IT전시회 업무를 정통부로 이관했다.

이에 따라 IT전시회운영위원회(위원장 양승택 전 정통부 장관)는 4차에 걸쳐 회의를 열어 IT전시관 세부 운영계획을 확정했다.

정통부는 APEC 정상회의 준비반을 구성하고 반장에 노영규 국장(방통위 기획조정실장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부회장)을 임명했다. 그는 전시회운영위 간사도 겸했다.

노 반장의 증언.

“그해 5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으로 파견나갔는데 7월께 석호익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KISDI 원장 역임, 현 통일IT포럼 회장)이 ‘정상회의 정통부 준비반장을 맡아 행사준비를 하라’고 해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인원도 예산도 사무실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송경희 팀장(현 미래부 인터넷정책과장)과 사무관 2명, 주무관, 산하기관 파견자 등 8명으로 반을 구성했습니다. 매주 회의를 열어 전시회 세부 운영계획과 전시관 구성 콘셉트를 마련해 개막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밤샘 작업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기업관은 삼성전자관이 와이브로 시스템 단말기와 102인치 PDP 등 세계 최대 크기 디스플레이 제품을 전시했다. LG전자관은 디지털가전과 모바일폰, 홈네트워크 등을, KT관은 와이브로 단말기와 체험시스템, u홈, u시티 등을 선보였다. SK텔레콤관은 위성DMB와 텔레매틱스, 디지털홈, 모바일게임 등을 전시했다.

IT전시관을 만드는 데 정부 예산 41억원과 기업체 43억원 총 84억원이 들어갔다.

정부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에게 DMB와 디지털카메라를 선물했다.

IT전시회는 “원더풀 IT코리아”를 연발하게 했다. 이로 인해 APEC 정상회의를 IT APEC 정상회의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한국이 디지털 홀씨를 세계로 날려 보낸 가슴 벅찬 행사였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