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우리에게 필요한 `포스트ICT 전략`

[데스크라인]우리에게 필요한 `포스트ICT 전략`

정보통신기술(ICT)업계 CEO들이 가끔 정색을 하고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사업을 하려면 절대로 ICT쪽은 하지 마라”는 것이다. 자부심 강하기로 유명한 ICT CEO들이 정작 ICT를 하지 마라니, 역설적이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ICT 시장의 지형을 그려보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계를 호령하던 글로벌 기업조차 하루 아침에 몰락한다. 변화가 빠른 만큼 리스크도 그만큼 크다. 위험부담을 감안하면 차라리 비 ICT 전통산업이 훨씬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다. 요즘처럼 CEO들의 하소연이 와 닿는 때도 없다. 스마트폰과 LTE가 등장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포스트 스마트폰’과 ‘포스트 LTE’ 전략을 내놓아야 하니 말이다.

애플이 아이폰6 시리즈와 애플 워치를 내놓으면서 “애플도 별 것 없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혁신보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경쟁사의 제품 전략을 사실상 베끼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까. 스마트폰 기술이 성숙기에 이른 지금은 잡스라도 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그런데 이번 애플 발표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전자결제서비스 ‘애플페이’다. 엄밀히 말하면 ‘애플페이’ 그 자체보다 이 서비스를 하기 위한 애플의 ‘협업 비즈니스’다. 애플페이와 같은 서비스는 이미 구글이나 여러 통신사들이 선보였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애플은 성공 공식 같은 것을 찾아낸 느낌이다.

애플은 ‘애플페이’ 론칭을 위해 미국 신용카드 결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비자, 마스타,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3대 카드사와 손을 잡았다. 또 메이시스 블루밍데이스 등 백화점과 슈퍼마켓, 맥도날드, 스타벅스, 나이키 등 22만여곳의 소매점과 제휴를 맺었다. 그동안 소비자들이 가맹점이 없어 스마트폰 결제의 이용가치를 못 느낀 것을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하다.

한편으로 우리 기업의 자화상이 오버랩 된다. 한국에서는 이미 2년 전 스마트폰 결제시장에 통신사, 스마트폰 제조사, 금융사 등이 모두 뛰어들었다. 그런데 지지부진하다. 서로 자신들이 주도하려고 아귀다툼만 벌인 결과다.

스마트폰 결제뿐만 아니다. 메이저 출판사와 협업이 불발되면서 e북 시장은 여전히 불모지나 다름없다. 아마존이 메이저 출판사를 설득시켜 출판 유통혁명을 일으킨 것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스마트카, 스마트 의료 등도 하나같이 주도권 싸움으로 표류한다. 얼마 전 공개 워크숍에서 자동차와 전자업체 관계자가 서로 “기술을 모른다”며 공개적으로 비방한 것은 우리 협업 비즈니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스마트폰과 LTE를 정점으로 ICT 산업은 새 성장 모맨텀이 필요하다. 전통산업과 융합이 대안으로 일찌감치 제시됐다. 아마존과 협업한 메이저 출판사들은 매출은 줄었지만, 유통 비용을 줄이면서 오히려 이윤이 늘어났다. 협업이 전통산업에도 기회가 되는 셈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포스트 ICT’ 전략은 혁신적인 신기술보다 협업을 잘 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다.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욕심부터 먼저 버려야 한다. 이것이 안 되면 협업은 요원하다. 백지장도 맞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장지영 정보방송과학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