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2주년 기념사]기술 존중 사회를 함께 만들겠습니다

남은 100일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2014년입니다. 지난봄 느닷없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로 얼룩졌습니다. 어린 학생 한 명 구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를, 유가족은 물론이고 국민의 허탈감을 달래주지 못하는 정치권을 향한 분노가 여전합니다. 억장이 무너져 좀처럼 일손이 잡히지 않는 올해입니다.

기술인 마음은 더욱 뒤숭숭합니다. 창조경제를 계기로 기술 중심 사회로의 변화를 기대했건만 달라진 게 없습니다. 기술기업과 기술인이 대접을 받는 사회는 여전히 멀리 있습니다. 기술산업은 수출과 무역수지 흑자를 주도해 국민 경제를 떠받쳤지만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합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기술산업까지 날로 힘이 세집니다. 세계 최고 인프라와 제조산업을 앞세운 ‘ICT 코리아’ 명성은 약해졌습니다. 탈출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기입니다.

기술산업의 위기는 그간 숱하게 찾아왔습니다. IMF 관리체제, 글로벌 경제위기부터 PC, 인터넷, 모바일과 같은 기술 패러다임 변화까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슬기롭게 극복했으며 국가 경제 위기까지 넘겼습니다. 이 위기 극복 경험이 유전자로 남아 앞으로 닥쳐올 위기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져 위기는 더 자주 나올 것입니다. 회복할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해 한 번만 삐끗해도 치명상을 입습니다. 위기가 오기 전에 선제적인 대응이 절실합니다. 사물인터넷(IoT)부터 자동차, 금융 등 다른 산업과의 융합까지 적극적인 사업화와 파격적인 정책 지원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디지털시대 들어 기술은 쏟아져 나옵니다. 어떤 구상이라도 구현할 기술을 쉽게 찾거나 만들 수 있습니다. 기술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이 도전을 북돋는 환경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10여 년 전 한국은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벤처 붐을 타고 서비스부터 하드웨어까지 세계 첫 기록을 쏟아냈습니다. 새롭고 창의적인 사업 모델을 우리가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은 미국 기업은 물론이고 중국 기업을 좇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우리 기술인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사회가 더 문제입니다. 통신업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정보통신 서비스와 질 좋은 단말기를 제공해도 칭찬보다 비난을 더 많이 받습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체는 세계 최고를 유지하지만 세상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인터넷과 게임·콘텐츠 산업은 순기능보다 역기능만 부각시키는 사회입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균형 감각마저 잃은 그릇된 비판도 난무합니다. 똑같은 기술이라도 한국에서는 비난을, 외국에서는 칭찬을 받습니다. 진흥보다 규제 칼날만 매섭습니다. 하나같이 기술인의 남은 의욕까지 떨어뜨립니다.

기술인이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사회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소통 부족은 곧 정당하지 않은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이라도 바꿔가야 합니다. 뭔가 개발할 때부터 사람들의 삶과 사회를 얼마나 편하고 풍요롭게 만들지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합니다. 세월호로 불거진 안전 문제를 비롯해 계층 간 격차까지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기술은 당연히 환영을 받습니다. 정당한 평가와 대가도 뒤따릅니다.

기술을 존중하는 사회가 오면 창의적이고 유용한 기술 개발을 막는 장벽이 덩달아 사라집니다.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달라진 사회가 기술 진보를 다시 촉진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생겨납니다. 누구보다 먼저 기술인 스스로 만들어갈 일입니다. 전자신문은 이 노력을 적극 돕겠습니다. 기술인이 사회와 소통하는 길목을 충실히 지키겠습니다. 서른 두 살 전자신문의 새 임무입니다.

전자신문 임직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