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99>스타장관의 선거 차출

이별(離別) 앞에서 그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제가 마음이 여려서요. 맨날 이래요.”

2006년 3월 21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이날 정통부 대회의실에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노래했다. 3년 23일 동안의 최장수 장관이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2006년 3월 2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보통신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친 후 정통부 간부들과 악수하고 있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2006년 3월 2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보통신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친 후 정통부 간부들과 악수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우리나라에서 향후 10년, 15년 후에도 지속될 먹거리를 창출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장관직을 수행한 지 3년여가 지난 오늘 여러분과 작별하는 시간입니다.”

진 장관은 이임사에서 “지난 3년여간의 땀과 노력 덕에 IT산업은 국가 주력산업으로 자리매김했고 IT839 정책은 외국이 배우고 싶은 한국 브랜드이자 자랑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국민이 잘사는 세계 5대 강국, 3만달러 시대 달성이라는 국민의 간절한 염원에 도전하려 한다”며 “부국(富國) 못지않게 부민(富民)이 중요하다는 민본사상(民本思想)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열정으로 이 몸을 불태워 보려 합니다. 열정을 경영하고….”

진 장관은 이 대목에서 감정이 격해진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볼 위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직원들의 격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잠시 감정을 추스른 진 장관이 “제가 마음이 여려서요. 맨날 이래요”라며 이임사를 계속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그는 “성공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가치 있는 도전이라면 반드시 성공을 이뤄냈던 지난 삶처럼 이번에도 반드시 성공해 3만달러 시대를 창조하는 데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진 장관은 간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실·국을 돌며 인사한 후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정통부를 떠났다. 그가 말한 공익근무가 해제된 것이다.

진 장관의 재임 3년 23일은 역대 최장수 장관 재임 기록이었다. 이전까지는 3년 3일간 재임한 박원근 체신부 장관(작고)이었다.

진 장관은 참여정부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혁신의 아이콘이자 스타 장관이었다. 여권에서 차출 영순위인 ‘선거의 블루칩’이었다. 그의 차출설은 2004년 4·15 총선을 앞두고 여권발로 꾸준히 나돌았다. 그는 이해찬 국무총리(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와 친하게 지냈다. 가끔 골프도 쳤다. 이 총리가 어느 날 진 장관에게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라”고 권유했다. 그는 “정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총선 출마설이 꼬리를 물었다.

그해 12월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소프트엑스포 2003’이 개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첫날 개막식에 참석, 축하연설을 했다. 행사가 끝난 뒤 노 대통령을 안내하던 진 장관이 대통령에게 물었다.

“제가 총선에 나가야 한다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노 대통령이 ‘허허’ 웃더니 “에이, 내가 보니까 진 장관은 정치는 잘 못할 것 같으니 정통부 일이나 잘하세요. 걱정마세요.”

해가 바뀌자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왔다. 한참 뒤에 ‘서울시장-강금실(법무부 장관 역임, 현 법무법인 원 고문변호사), 경기도지사-진대제’ 동반 출마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진 장관은 2005년 5월 30일 기자들에게 “지방선거 출마를 제의받은 적도 없고 출마할 의사도 전혀 없다”며 “참여정부 끝까지 정통부 장관으로 일했으면 한다”고 출마설을 일축했다.

그해 11월 진 장관이 선거에 나간다는 소문이 다시 정가(政街)에 나돌았다. 진 장관이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계속 언론에 오르내렸다.

그해 12월 어느 날.

진 장관은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과 독대해 특별보고를 했다. 보고 내용은 IT산업과 정부의 역할 그리고 의사결정 점검표(DMB)였다.

진 장관은 “정부는 시장상황을 분석하고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신규 서비스, 사업자 허가, 도입 시기 등을 결정하는 이른바 IT산업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특히 원천기술은 국책연구기관에서 개발해 민간에 이전하고, 시장 수요가 불확실한 경우 공공 분야에서 초기 수요를 창출해 기업의 위험을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진 장관은 그해 9월 6일 동양인 최초로 EU 의장국인 영국이 주관하는 EU IT장관회담인 ‘i2010 콘퍼런스’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당시 연설 주제가 ‘IT산업 환경에서 정부의 역할’이었다.

진 장관은 연설에서 “정보통신산업의 가치사슬(Value-Chain)과 그에 따른 민간에 대한 산업 촉진자로서의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진 장관의 증언.

“주한 영국 대사가 장관실로 와서 기조연설을 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어요. 처음에 거절했더니 ‘그러면 일본 장관을 초청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으냐’고 해요. 그래서 참석하게 됐습니다.”

진 장관은 이에 앞서 7월 12일부터 15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정통부 주무 국장과 해외 IT주재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IT주재관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해외에서 전략회의를 연 일은 정통부가 처음이었다.

진 장관의 증언.

“정책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현장을 보고 수립해야 실효성이 높습니다. 책상머리 정책으로는 제대로 된 정책이나 전략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10년 안에 우리 IT산업을 크게 위협할 나라라고 판단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 하잖아요. 당시 중국 공단과 삼성 현지 사업체도 방문했습니다.”

그해 12월 14일. 진 장관은 동남아 순방에 나선 노 대통령을 수행해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했다. 공식 일정을 끝낸 뒤 쉬고 있는데 노 대통령이 급히 불렀다. 영부인과 부속실장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출마 이야기를 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세요.”

“정치는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 절대 안 나갑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낙선 사례를 언급하며 출마를 권유했다. 두 시간 반가량의 면담에서 진 장관은 노 대통령의 권유를 거부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정통부 장관 경질을 사전에 통보했다.

진 장관의 증언.

“노 대통령이 ‘장관을 3년 정도 했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하시더군요.”

2006년 들어 연초부터 진 장관 출마설이 마치 봄꽃 날리듯 난무했다. 5·31 지방선거 출마가 확정됐다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진 장관 거취와 관련해 정통부는 2월에 두 번이나 해명자료를 냈다.

정통부는 2월 14일 “진 장관은 지자체 선거 출마를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지금처럼 정통부 장관으로서 우리나라 먹을거리 산업 창출을 위해 계속 매진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해명자료를 발표했다.

며칠 후 다른 언론이 여권 핵심 인사들이 회동을 갖고 진대제 장관을 경기지사에 출마시키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정통부는 2월 22일 거듭 “진 장관은 지자체 선거에 출마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계속 IT산업 발전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해 2월 하순 어느 날.

노 대통령이 진 장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그 자리에서 거듭 지방선거 출마를 권유했다. 진 장관이 계속 거부하자 나중에는 “그동안의 인연을 생각해 출마해 달라”고 부탁했다.

진 장관의 기억.

“더는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출마하는 걸로 방향이 잡혔어요. 청와대에서 나와 이해찬 총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나가면 서울시장으로 나가야지 경기지사가 뭡니까.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강금실 전 장관과 경선을 해 이긴 사람이 서울시장, 진 사람이 경기도지사로 나가는 것으로 합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총리도 ‘좋다’고 했습니다. 청와대도 좋다고 했는데 당에서 거부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진 장관은 2월 28일 기자들에게 “5·31 지방선거에 출마해줄 것을 정식 제안받았다”며 출마와 관련해 가족의 반대가 심했고 “특히 아내는 출마하면 도망가겠다”고 했다는 얘기도 소개했다.

진 전 장관은 3월 26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진 장관은 경기 수원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가진 입당식에서 로봇을 통해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통일부 장관 역임, 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에게 입당원서를 제출해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정 의장은 “역시 진 전 장관”이라며 “로봇에게 입당원서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진 전 장관은 선거운동을 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엄수했다. 그 원칙은 △대통령을 비방하지 않는다 △중도사퇴는 없다 △법을 지킨다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투표결과는 그의 패배였다.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경기도지사 역임, 현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가 61.8%를, 진 전 장관은 30.3%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열린우리당 후보 중에서 유일하게 30%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후 그는 정치와 담을 쌓았다.

2007년 대선 뒷이야기 하나.

정치와 단절한 그를 여권이 대선 후보로 추대하려는 노력을 했다. 17대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진 전 장관은 그런 소문을 피해 그해 5월께 제주도로 내려가 골프를 치며 지냈다.

그런 그에게 이해찬 총리가 극비리에 측근을 보내 ‘대선 후보 출마의사’를 타진했다. 청와대와 교감을 한 터였다. 그는 펄쩍 뛰며 단번에 거절했다. 이런 보고를 받은 노 대통령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뒀다가 대선에 내보낼 걸, 괜히 경기지사에 내보냈네”라고 했다.

타의로 정치판 외도(外道)를 한 그는 2006년 10월 IT벤처 투자전문회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인생 4막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