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KB국민은행 상임감사 "KB사태, 이사회가 변해야 문제 해결"

“국민은행 이사회에서 보낸 내부 문건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문건에는 특별감사 행위가 불법이니 감사보고서를 ‘봉인’하라고 적혀있습니다.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이사회가 감사해임을 논의했습니다. 이사회 결정도 감사하는 것이 감산데, 시끄러우니 도둑 잡지 말라고 경찰을 내치는 겪입니다. 그야말로 썩은 물입니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모두 물러났지만 최초 문제제기로 주전산기 갈등을 촉발시켰던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는 경징계를 받으면서 현직에 남았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그가 언론과 처음으로 만났다. 1시간 3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가 풀어 놓은 사실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정병기 KB국민은행 상임감사 "KB사태, 이사회가 변해야 문제 해결"

정 감사는 “친(親) 지주 임원들로 구성된 스티어링 커뮤니티는 전문 평가단 없이 전환 작업을 추진했고 벤치마크테스트(BMT)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유닉스 제안가격을 3055억원으로 책정했다가 다시 1900억원대로 낮췄다”면서 “직무를 유기했고 주먹구구식이었다”고 질타했다.

정 감사는 부패한 이사회가 개혁되지 않는 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이사회가 회사 경영 시스템을 모두 망가뜨렸다”면서 “온갖 음해와 언론플레이를 통해 경영자의 눈과 귀를 막고 특별감사를 중단하라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사태가 회장과 행장 간 내부 갈등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사회를 포함해 KB 내부의 썩은 줄대기 문화가 만들어낸 비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IT본부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이사회에 접수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고 전했다.

정 감사는 “지주사, 사외이사들이 제 행위에 대해 이사회 권위에 도전한다느니, IBM과 유착이 있다느니, 권력층과 교감이 있는 표적감사라고 비난했지만 잘못된 처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사태에 지주사와 사외이사, 이들과 연계된 관련 임직원들이 집단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정 감사는 “이들은 최고 엘리트의 가면을 쓰고 인맥, 학맥 등을 동원해 온갖 거짓으로 비리를 은폐했다”면서 “지주사 임직원들과도 수시로 모여 협의를 가졌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한 행위를 청문회를 열어서라도 낱낱이 밝혀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외이사들이 IBM을 공정위에 제소한 것과 관련 “이는 입찰 결과가 유닉스로 결정된 뒤에나 가능한 사안”이라며 “IBM 메인프레임을 연장 사용하게 된다면 89억원의 패널티를 물지 않아도 되고 공정위가 불공정행위라고 결론을 내도 IBM이 사용료를 낮추면 그 뿐”이라고 설명했다.

내부에서 해결하지 않고 문제를 감독당국에 신고한 부분에 대해 정 감사는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분들이 특별감사보고서 접수를 막은 장본인들인데, 과연 해결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징계 과정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정 감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감사를 집행한 상임감사에게 왜 징계를 내렸는지 명확한 근거와 이유를 밝혀야 한다”며 “사외이사를 포함한 모든 관련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시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