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풍력 규제 완화...이제는 경쟁력 강화가 숙제

각종 규제로 더디게 성장해 온 국내 풍력 시장이 일대 전기를 맞았다. 환경부와 산림청이 ‘1등급지 설치 제한’ ‘산지 개발 면적 제한’ 조항을 완화하면서 인허가에 발목 잡힌 상당수 육상 풍력 사업이 궤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입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어온 발전 사업자들은 최근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당장 연말까지 추진되는 사업만 200㎿ 규모를 넘어설 전망이다. 해상 분야에서는 대규모 해상 풍력 단지 조성을 목표로 ‘서남해 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100㎿규모 1단계 사업을 시작으로 오는 2020년까지 총 2.5GW 규모 단지를 세울 계획이다. 정부는 육·해상 풍력 시장 조성으로 제2의 조선 신화를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세계 시장 진출에 필요한 트렉 레코드,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한 테스트 베드로서 국내 시장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숙제는 기업 경쟁력 강화다. 국내 풍력 업계 기술 개발이 늦고 최근 일부 대기업은 사업 축소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어렵게 차린 밥상을 자칫 해외 기업에 내 줄 가능성도 낮지 않은 상황이다.

중장기 세계 풍력시장 현황 및 전망. 출처: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
중장기 세계 풍력시장 현황 및 전망. 출처: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

◇규제 완화로 국내 시장 본격 성장 기대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육상 풍력 보급과 환경 보전을 조화시킬 수 있는 ‘육상 풍력 개발사업 환경성 평가 지침’을 마련하고 이달 6일 시행에 들어갔다. 풍력 사업의 최대 걸림돌인 생태자연 1등급지 설치 규제를 완화한 것이 골자다. 한국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인허가 단계에 묶여 있는 육상 풍력 사업은 총 53개소, 1800㎿ 규모다. 대다수 사업이 생태 자연 1등급지 설치 규제에 묶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파급력을 가진 조치라는 평가다. 환경 훼손을 막기 위해 1등급 권역에서는 충분한 환경 보호 대책을 강구하는 것을 전제로 입지 가능 여부를 검토하도록 했다. 규제 완화로 당장 7개 육상 풍력 사업이 인허가를 받게 된다. 동대산 풍력(울산시, 20㎿), 포도산 풍력(경북 영양군, 20㎿), 염수봉 풍력(경남 양산시, 28㎿), 태백 풍력(강원 태백시, 40㎿), 장흥 풍력(전남 장흥군, 20㎿), 육백산 풍력(강원 삼척시, 20㎿), 강릉안인 풍력(강원 강릉시, 60㎿) 등 설비 용량 기준 208㎿ 규모다. 현재 국내 풍력발전 누적 설치량의 30%에 달하는 수치다. 13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3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 5000억원의 투자 유발 효과가 발생될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이에 앞서 산림청은 풍력 발전 시설 설치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산지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표했다. 풍력 발전 허가 면적을 종전 3만m²에서 10만m²까지 확대했고 풍력 발전 시설이 주로 산 정상부에 위치하는 특성을 감안해 진입로는 타당성 평가를 받지 않고 별도의 설치기준을 적용받도록 했다. 환경부와 산림청 조치로 풍력사업 여건이 개선되면서 연간 수천억원의 투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풍력 발전 시설 관련 투자액은 1㎿당 15억~18억원이다. 차동렬 풍력협회 팀장은 “인허가에 묶인 사업 가운데 절반인 800~900㎿ 규모의 사업이 추진되면 장기적으로 연간 3000억원 이상의 투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해상 풍력 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더욱 크다. 정부가 오는 2020년까지 준공하고 운영을 계획한 사업은 모두 11건, 설비 용량은 3670㎿다. 원전 3기 설비 용량을 넘어선 규모다. 이 가운데 서남해안에 조성될 해상 풍력 단지 규모만 2500㎿에 달한다. 민관 합동으로 총 9조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정부는 조선·중공업, 해양플랜트, 건설, 전기, IT 등 연관 산업과 접목해 해상 풍력 분야에서 조기에 세계 시장을 선점한다는 목표다. 서남해상에 실증단지를 조성하는 등 국산 풍력 발전기의 테스트 베드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기업 경쟁력 강화 시급

지난해 말 기준 국내 풍력 발전기 누적 설치량은 490㎿다. 대다수가 해외 기업 제품으로 덴마크 베스타스와 스페인 악시오나의 점유율이 각각 56.9%, 13.1%에 달한다. 한진산업, 두산중공업, 유니슨, 효성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우리 기업 점유율은 2~4%대에 불과하다. 시장도 작고 그마저도 해외 기업이 선점한 것이 국내 풍력 시장의 현주소다. 덴마크 베스타스, 미국 GE, 독일 지멘스, 중국 골드윈드, 시노벨 등 글로벌 풍력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실적 확보가 시급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 풍력 발전기 전 제조사를 통틀어 동일 모델을 20기 이상 제조한 경험을 보유한 기업이 없다. 풍력 사업에 고전을 면치 못해 수년째 적자를 지속해왔고 최근 사업 축소 움직임을 보이는 곳도 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간 현대중공업은 수익성이 나지 않는 사업을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풍력 사업을 주관하는 그린에너지사업부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그린에너지사업부는 지난해 매출액 3143억원, 영업손실 1031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삼성중공업도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에 앞서 지난해 그룹 경영 진단을 실시해 해상풍력 사업을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시장 확대로 국내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유도한다는 정부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서남해 해상 풍력 사업에서 이미 징후가 포착됐다. 테스트 베드 성격이 짙은 1단계 사업에 삼성중공업, 효성이 각각 불참을 선언했다. 제품 개발 속도가 더디고 정부가 요구한 가격 가이드라인에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참여 기업은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 단 2곳에 불과하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시장이 열려도 국내 기업이 수혜를 누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반면에 해외 기업은 국내 시장 개화에 발맞춰 공략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세계 2위 풍력 터빈 제조 기업인 중국 골드윈드가 연내 한국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지멘스는 지난 3월 제주 가시리 풍력 발전 사업에 3㎿급 풍력 발전기 10기를 공급하기로 계약했고 알스톰은 김녕 풍력 발전 단지에 발전기 10기를 공급했다. 베스타스도 5월 영양 풍력 발전 단지에 3.3㎿급 풍력 발전기 18기를 설치하는 등 국내 시장에서 매년 안정적 수주를 확보하고 있다.

손충렬 세계풍력에너지협회 부회장은 “육상 풍력 규제 완화와 정부 주도 해상 풍력 사업으로 국내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 기업 제품 가격이 여전히 해외 제품에 비해 소폭 높은 것이 사실”이라며 “국내 실증 사업과 신재생발전의무할당제(RPS)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실적을 쌓지 않는다면 시장 확대에 따른 수혜가 국내 기업에 돌아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슈분석]풍력 규제 완화...이제는 경쟁력 강화가 숙제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