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60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60회

9. 그의 이름은 아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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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는 어쩌면 슬펐다. 오에스테스는 그의 오랜 친구였다.

“나에게 로마는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로마는 일부이다. 일부를 위해 전부를 잃을 순 없다. 우린 다른 곳을 먼저 공격한다. 그렇게 하나씩 지상에서 지워가면 다시 로마를 만난다. 그때 로마는 영원히 지워질 것이다.”

오에스테스는 무릎을 꿇었다. 아틸라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지나친 겸손은 배반을 가장한 것이다.

“제왕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아틸라가 그를 더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난 누구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건 나 밖에 없다. 너는 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친구이다. 그래서 믿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을 뿐이다.”

“아틸라, 나의 친구여, 지난번의 암살사건은...”

아틸라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했다.

“난 필요하면 쟁취하고 불필요하면 가차없이 버린다. 그게 나다. 오에스테스, 언젠가, 그 언젠가에도 네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일지 아닐지 알게되겠지.”

오에스테스는 충분한 굴복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아틸라의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오에스테스, 어찌 내게 당당하지 않은가?”

아틸라와 오에스테스는 오랫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거리를 잴 수 없는 이질감이 두 사람 사이의 신뢰를 어기고 있었다.

왕 눌지는 모처럼 안도했다. 이제 다시 금인상을 꺼내었다. 순간 금인상이 자신의 머리속을 뚫고들어오는 듯 했다. 눌지는 기절했다. 그 기절 속에 신라의 장차 풍경이 있었다.

저쪽에서 묘한 고양이 눈빛을 가진, 회색빛과 호박색빛의 눈동자를 가진 작고 단단한 체구의 그가 한혈마와 한 몸이 되어 그간의 왜소한 역사 전체를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높이 쳐들고 있는 황금검은 그간의 왜소한 역사 전체를 횃불로 치솟고 있었다. 또 저쪽이다. 그는 세레스의 능라를 갑옷처럼 걸치고 반인반마의 형세로 날아오고 있었다. 황금검의 불길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를 죽일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말은 방향을 잃은 함대처럼 충돌할 지경이었다. 서로 튕겨져 나갈 것이다. 순간 쨍 하며 황금검이 서로를 올라탔다. 두 개의 황금검은 단 하나의 불꽃이 되었다. 진짜 황금보검이 되었다. 두 사람은 단 하나의 거대한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진짜 황금보검은 거무튀튀한 빛깔로 스러지며 누군가의 무덤속으로 털석 던져졌다. 떨어졌다. 그 무덤의 묘비명이 흐릿했다. 눈에 가물 잡히지 않았다.

눌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신이 들었다. 온 얼굴과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모조리 헛헛했다.

“아...이렇게 되는 것인가? 누구의 무덤이란 말인가?”

그는 금인상을 쳐다보았다. 금인상은 먼 조상의 설득이기도 한 뚜렷한

황금색이었다. 눌지는 금인상을 품에 안았다. 멀리서 한혈마의 기찬 소리가 들려왔다.

히이잉.

발렌티니아누스는 눈이 뻘갰다. 방금 피라도 실컷 빨아먹은 승냥이 마냥 살기의 심지가 유난했다. 그의 눈동자는 쨍 깨질듯 위태하게 갈라져있었다. 플라키디아는 아들 발렌티니아누스의 눈치를 보고있었다. 예사롭지 않았다. 어미가 봐도 포악한 짐승이었다. 숨소리 조차 변덕스러웠다.

“당장 그를 죽인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롭지 않다.”

“왜요? 당장 죽여야해요. 전 잠을 못자겠습니다.

계집들 엉덩이 까는 것도 못하겠다구요. 그놈이 날 원로원과 로마시민들과 힘을 합쳐 나를 끌어내릴겁니다. 나를 광장에서 처형할거라구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플라키디아는 발렌티니아누스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손길을 획 뿌리쳤다. 그는 땀인지 무언지 모를 냄새 독한 액체를 온몸에서 쏟아내고 있었다. 떨고 있었다. 그의 살집 뻑뻑한 복부가 덜덜 덜덜거렸다.

“그렇게 베짱이 없다니. 아틸라는 반드시 다시 공격해 올 것이다. 우리가 아에테우스를 죽여버린다면 누가 아틸라와 싸우지? 아틸라를 누가 상대하느냐 말이다. 그때가서 죽여도 늦지 않다.”

“그게 언제입니까? 언제요? 언제?”

발렌티니아누스는 악을 썼다.

“아, 내가 아틸라에게 전령을 보내 빨리 쳐들어오라고 할까요? 네? 어머니? 빨리 공격하라고 하는게 좋겠죠?”

그러자 플라키디아는 발렌티니아누스의 뺨을 쩌억 갈렸다. 발렌티니아누스가 어머니의 손을 강하게 잡아비틀었다. 플라키디아는 전혀 아픈 기색을 하지 않았다. 손목의 살껍질이 짓이겨지며 벗겨지고 있었다.

에첼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녀는 황금보검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에스테스가 배신을 알려야했다. 오에스테스의 위대한 황금의 제국은 자신이 지배할 로마였다. 둥둥 둥둥. 그녀의 말은 자꾸 떠오르고 있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