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버나드쇼가 소재부품산업에 주는 교훈

[데스크라인]버나드쇼가 소재부품산업에 주는 교훈

“메모리만 남았습니다.”

최근 만난 유력 반도체 장비 업체 대표가 내린 진단이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소재부품 전 품목에 걸쳐 중국 등 해외에 이미 주도권을 내줬다고 단언했다. 최근 시황이 좋은 메모리 반도체만이라도 지키고 있다는 데 위안을 삼아야 한다며 옅은 한숨으로 여운을 남겼다. 이조차도 불안하다는 뜻이다.

몇 년 새 판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리 수출 1호 품목이고 미래 먹거리는 소재부품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던 게 엊그제다. 하지만 이제 우리 기업들은 중국세에 밀리고 대만 기업에도 치이는 데다 엔저 등 대외 여건 변화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형세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 일부를 빼고는 소재부품 업체들 3분기 실적이 대부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체감 온도는 영하권에 들어섰다. 대기업도 메모리 사업을 제외하고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모바일AP 사업은 중국 기업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파운드리 사업도 중국 기업들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눌려 기를 펴기 힘든 상황이다. 디스플레이는 선도 기술로 앞서면서 겨우 체면치레 정도다.

대기업들이 신수종 사업으로 눈독을 들여온 아날로그반도체나 전력반도체 시장에서도 중국 진격을 두려워 할 정도니 어디 하나 기댈 곳조차 없다.

시스템반도체와 팹리스는 사정이 더 열악하다. 벤처 열풍의 주역이었던 팹리스 중에 생존 기업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물인터넷(IoT)과 웨어러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시스템반도체가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그나마 버팀목이었던 정부 지원도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축소되면서 기대도 함께 쪼그라들었다.

중국을 살펴보자. 중국의 지금은 막대한 내수 시장과 엄청난 인력·기술 투자 덕분이다. 정부가 나서서 물량 공세를 한 것이 주효했다. 특히 인력 투자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현재 중국 소재부품 분야를 주도하는 인력들은 대부분 해외파들로 채워졌다. 경력도 화려하고 경험도 풍부하다.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에서 짧게는 15년에서 길게는 20년을 근무하던 베테랑들이 본토로 들어갔다. 매년 수조원을 쏟아부으며 해외에 나간 인력을 불러들이고 새로운 전문가도 함께 키웠다.

소프트웨어(SW) 분야의 인도처럼 반도체 디스플레이에서는 중국 엔지니어들이 무서운 아이들로 자리 잡았다. 중국 정부가 학계에 쏟아붓는 연구자금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기초기술 연구에 10년 이상의 지원은 기본이다. 초짜 엔지니어 양성과 상용화 기술 개발에만 목매는 우리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승부는 지금부터다. 더 이상 밀리면 되돌릴 수 없다. 인력 확충부터 다시 시작하자. 해외에 나가있는 노하우를 갖춘 중견 인력들을 유치해 미래 시장을 이끌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금은 필수다. 정부만 쳐다보지 말고 대기업들도 곳간을 열자. 학계도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한발 앞선 시장 대응도 중요하다. 시스템반도체가 답이다. 역시 자금이 관건이다. 자금줄이 말라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팹리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펀드 구성도 좋은 방안이다.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주춤하다가는 곧바로 나락으로 추락한다.

서동규 소재부품산업부장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