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확대경]삼성의 변신을 기대하며

[최정훈의 디지털확대경]삼성의 변신을 기대하며

‘모방이 쉬울까 창조가 쉬울까’ 20여년 전 대기업 신입사원 연수 때 한 강연자가 질문을 던졌다. 새내기 사원들의 답은 둘로 나뉘었다. 현실적으로 사고한 대다수는 모방을, 질문의도를 간파한 일부는 창조를 택했다. 강연자가 제시한 답은 당연히 창조였다. 창조가 모방보다 더 쉽고, 얻게 될 성과도 더 크니 여러분은 그리 하라는 게 강연 요지였다.

창조와 모방의 우열을 가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조건과 환경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고, 모방이 창조의 동인(動因)이 될 수도 있기에 흑백논리를 적용하는 건 무리다. 그래도 강연자가 전달하려던 행간의 의미는 이해된다.

애플 아이폰이 시장에 첫선을 보인 건 2007년 6월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개념의 휴대폰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스마트폰의 원형으로 간주되니 이건 ‘창조’다. 3년 후 삼성전자가 갤럭시S를 내놨다. 후발제품이니 이건 ‘모방’이다.

2011년 11월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를 출시했다. 대화면 스마트폰의 새장을 열었으니 이건 ‘창조’다. 다시 3년 후 애플이 대화면 아이폰6 시리즈를 내놨으니 이건 ‘모방’이다.

두 회사는 창조와 모방을 한 번씩 주고받으며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현시점의 단면을 들여다보면 둘의 처지는 크게 다르다. 지난해 정점에 올랐던 삼성전자는 매출·수익 면에서 하향곡선을 기록 중이고, 반대로 애플은 사상 최대 실적을 향해 치닫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스마트폰이 캐시카우다. 회사가 만드는 B2C향 완제품 가운데 판매량이 가장 많을 뿐 아니라 대당 이윤 역시 가장 높다. 교체주기도 다른 전자제품에 비해 매우 짧으니 최상의 캐시카우 아이템이다. 애플이 7년 전 삼성, LG, 노키아 등 강자가 즐비한 휴대폰 시장에 출사표를 낸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스마트폰 시장이 영원한 블루오션일 리 없다. 스마트폰 평가 기준이던 ‘혁신’의 약효는 떨어졌다. 모방의 귀재 중국은 선두기업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3년 후엔 중국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젠 삼성전자도 차세대를 준비해야 한다. 스마트폰 사업이 부진하다고 이전의 캐시카우였던 가전 사업이나 반도체 사업으로 관심을 옮기는 건 소극적인 대처다. 시장에 편승하기보다는 시장을 만들고 선도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경영 1세대의 캐시카우는 전자제품이었지만 훗날에 대비해 메모리를 준비했다. 2세대 캐시카우는 메모리였고, 여기에 휴대폰을 추가했다. 3세대는 휴대폰에 다시 무엇을 추가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사물인터넷(IoT), 웨어러블, 헬스케어 등 어떤 것이 선택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이든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어)가 아닌 기술과 시장 선도자(퍼스트 무버)의 자세는 기본이다.

‘관리의 삼성’으로 고착된 이미지의 변신도 필요하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으로는 잘해야 현상유지다. 엄격한 관리는 위기를 넘기는 데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위기 후 얻게 될 기회는 관리가 아닌 창조에서 비롯된다. ‘관리의 삼성’ 이미지를 털어낸 ‘창조의 삼성’을 팬들이 고대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최정훈 정보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