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공무원과 `섬김`

[관망경]공무원과 `섬김`

한때 공무원 사회에서 ‘섬김행정’이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잘 모시어 받들다’는 사전적 의미처럼 공무원이 국민과 정책고객을 모시어 받들겠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공무원하면 생각나는 권위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자세에서 벗어나겠다는 뜻도 담겼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섬김이라는 단어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전의 관료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공무원의 행태도 눈에 띈다. 얼마 전 한 연구기관에서 정부부처에서 보낸 문서 양식을 우연히 보게 됐다. 연구성과 등을 보고할 때 양식에 맞춰 보고해달라는 내용이다. 여러 기관에서 온 다양한 문서를 정리해야 하는 입장에서 문서 양식 통일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방식이 문제다.

문서 양식 제목에는 정부 부처 사무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고 양식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달아서 ‘OOO양식’이라고 산하기관에 보낸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전달방식에 따라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진다. 문서 양식 통일이 필요하니 맞춰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양식을 보내고 이대로 보고하라는 것은 전혀 다르다. 이름을 적어 내려보낸 문서는 누가 보더라도 요청이 아니고 명령이자 지시다.

상급기관인 정부부처의 지시에 산하기관이 어쩔 수 없이 양식에 맞추겠지만, 기분이 좋을리 없다. 반대로 정중한 요청이라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싶어진다. 이것이 섬김의 가치다.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부정적이다. 섬김행정에 거꾸로 가는 일부 공무원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수많은 동료 공무원들이 개선해 온 공무원과 공직사회에 대한 이미지까지 훼손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