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 외환은행 통합 과정 `독단경영`

하나금융그룹의 외환은행 통합과정이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김정태 회장과 현 경영진이 2012년 2월 17일 체결한 노사정 합의내용을 사실상 폐기하고 독립법인과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던 경영진·금융위원회 서명날인 합의서까지 부정하면서 정치권으로 이슈가 비화될 조짐이다. 하나금융그룹은 ‘대형화가 곧 대박’이라는 경영전략이지만 일각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윤리를 망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2년 김석동 금융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김승유 하나금융지주회장(" 세번째), 윤용로 외환은행장(" 네번째)과 독립경영 보장을 골자로 한 노사정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 합의문에는 외환은행의 법인 및 명칭 유지와 합병 여부는 5년 경과 후 상호 합의를 통해 협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2012년 김석동 금융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김승유 하나금융지주회장(" 세번째), 윤용로 외환은행장(" 네번째)과 독립경영 보장을 골자로 한 노사정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 합의문에는 외환은행의 법인 및 명칭 유지와 합병 여부는 5년 경과 후 상호 합의를 통해 협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23일 법조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한다는 2·17 합의서 파기는 명백한 법 위반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체결한 노사정 합의서에는 ‘원칙적인 독립법인 유지 및 명칭 사용’을 최우선 합의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5년 경과 후 당사자(노사)간 합의가 있을 경우 통합협의가 가능하다(제1조 제2항)는 내용은 금융위원회에서 3자형태로 서명날인 했다. 만약 금융당국이 이를 뒤집고 조기 통합을 허용한다면 론스타 먹튀를 방조했던 과거 행태와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와 관련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조기 통합 관련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 노조 합의 없이 승인해 달라고 수시로 찾아온다”며 “분명한 것은 (합의서가 있는 만큼)노조와의 숙려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금융위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기통합 강행 과정에서 김정태 회장의 독선경영도 논란의 대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과 김기준·박원석·심상정 의원은 하나금융지주·외환은행 합의서 위반과 총회 방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진상조사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조기통합을 반대하는 노조와 직원 참여를 막기 위해 SNS 등을 통한 비상식적인 총회 참여 방해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은행 모 지점장은 “조기통합을 찬성하는 의도적인 댓글 달기를 종용하고 노조 총회 등에 참석하는 직원에게는 승진 누락 등을 언급하는 등 비도덕적인 경영진의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두 은행 간 성급한 조기 통합 추진으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내재된 구조적 위험은 간과하고 있다는 금융 전문가 분석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 은행지주사별 10대 그룹 위험노출액 규모는 하나금융지주가 31조5459억원(2013년말 기준)으로 신한금융에 비해 10%가량 높았다.

익명을 요구한 하나은행 관계자는 “대기업에 대한 여신이 편중돼 있는 상황에서 막연한 통합 기대감만을 강조하고 있어 부실경영 위험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내부 위험관리 시스템도 낙제점 수준이다. KT ENS, 동부그룹, 태산엘시디, 삼화제분 등 부실 대출로 인한 피해가 타은행 대비 높아 ‘운영 리스크’ 관리에 누수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통합으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핵심 사업 약화도 예상된다. 외국환 전문은행으로 47년간 쌓아온 외환은행 브랜드가 사라지면서 외국환 부문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고 하나은행의 경쟁력인 소매금융을 결합해 시너지가 배가된다는 주장도 두 은행 간 상이한 사업구조를 보유하고 있어 전혀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울러 은행이 통합될 경우 중복고객의 이탈과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장한도 감소로 타은행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와 관련 하나금융 관계자는 “노사 간 지속적으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만 밝혔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