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태의 IT경영 한수]<49>표준화의 중요성

[이강태의 IT경영 한수]<49>표준화의 중요성

IT에서 표준화는 매우 중요하다. 창조경제시대에 무슨 7080 시절 얘기를 하냐고 하지만 창조경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표준화가 더욱 중요하다. 표준화가 안 돼 있으면 쓸데없이 시장이 세분화되고 이에 따른 중복투자가 일어나게 된다. 시장이 작기 때문에 유지보수도 안 되고 새로운 요구사항도 잘 반영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똑똑한 개발자들이 창조경제를 뒷받침하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소프트웨어(SW) 개발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저그런 보통의 SW 재개발과 유지 보수에 매달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젊고 머리 좋고 열정 넘치는 프로그래밍 천재들은 고객 사이트에서 납기 맞추느라 밤을 새운다. 외국에선 이미 보편화돼 있는 모듈을 서로 비밀리에 개발하면서 금쪽같은 젊은 날이 허비된다.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우선 지금의 간편결제를 한번 보자.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간편결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개발 업체에서는 자기들 것은 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다 똑같다. 이미 우리가 직구로 다 경험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모든 업체들이 다 자기 간편결제 모듈에 나름대로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페이나우, 엠페이, 케이페이, 셀프페이, 페이핀, 페이올, 페이게이트…. 자기가 공들여 개발한 결제 모듈에 브랜드를 붙여 상품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의 간편결제 시장은 좀 심하다. 어떻게 보면 시장은 작고 플레이어는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전에도 대형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이 고객사에 설치한 애플리케이션에 이름 붙여서 패키지화를 시도한 사례가 있었다. 당연히 시장에서 알아주지 않았지만 자기들은 나름대로, 특히 영어 약자로 이름 붙여서 대단한 작품인 양 부르는 때가 많았다. 당연히 경영진 바뀌고 나면 내부적으로도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다.

지난해 금융기관 IT리스크 거버넌스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각 금융기관의 IT관리자들을 면담하면서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우선 시중 은행의 업무 범위나 프로세스가 거의 다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포지티브 방식에 의해 할 수 있는 일이 딱 정해져 있다. 당국이 금융기관의 업무영역에 대해 인허가권을 갖고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수시로 각종 감사를 통해 시키지 않은 일을 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줄초상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이 다르지 업무 영역은 다 동일하다. IT 입장에서 보면 은행 프로세스별로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패키지 얘기만 나오면 몸서리를 치면서 우리나라 환경에는 안 맞다고 손사래를 친다.

20여년 전에 포스(POS) 영업을 했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이나 우리보다 못하는 후진국에서는 다 패키지를 쓰고 있었다. 선진국은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후진국은 별도로 개발할 여력이 없어서 그냥 업체의 패키지를 쓰는 것을 당연시됐다. 우리나라는 POS 계산대의 업무 프로세스가 다 똑같은데도 다 따로 개발했다. 결과적으로 지금도 수백 가지의 POS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한다. 만약 부가세가 변동되거나, 마그네틱(MS) 카드의 서명처리에서 IC카드의 암호처리를 하게 되면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POS 공급업체를 찾으러 다녀야 한다. 소스코드도 없고 POS 공급업체가 망한 사례도 많다.

IT를 개발할 때, 우리는 경쟁사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우리 애플리케이션이 업계에서 가장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을 봤다. 나중에 보면 작은 부분에서 새로운 기능 몇 개 반영한 것이 전부다. 그것조차 몇 달 지나지 않아 업계에서 일반화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존 경쟁업체와 어떻게든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경영에서의 차별화는 IT 프로그램에서의 차별화가 아니다. 새로운 시장과 상품과 서비스에서 차별화를 해야지 다 똑같은 업무처리를 IT에서 차별화하려고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얼핏 모순되는 얘기 같지만 공통된 부문은 업계 스스로 표준화를 해서 공통 모듈을 쓰고 새로운 차별화 영역에서는 각자의 역량에 맞는 별도의 모듈을 개발해서 써야 한다. 소프트웨어 개발과 유지보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시장은 좁고 작다. 작은 시장에서 같은 업무를 서로 다르게 개발하는 것은 집단자살 행위다.

옛 상사가 고위공직자로 일할 때 우리나라 아파트 창문 크기를 표준화해서 공정을 크게 단축시키고 비용을 줄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건설현장에서조차 표준화가 이렇게 큰 위력을 미치는데 IT 부문에서 같은 모듈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면서 홍보에 열 올리는 것을 보니 연초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어디에다 몇 개나 팔 수 있을까?

CIO포럼 회장 ktlee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