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무늬만 기술금융 제대로 검증해야

[신화수 칼럼]무늬만 기술금융 제대로 검증해야

누구도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학생은 시험으로, 선생은 강의로 평가를 받는다. 직원과 경영자는 성과를 각각 상사와 주주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국정 지지도 여론조사에 신경이 쓰는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그 평가기준에 맞춰 행동하게 마련이다. 성과를 정확하게 측정할 뿐만 아니라 미래 지향적 기대치를 담아야 좋은 평가기준라고 할 수 있다.

은행 관심이 온통 기술금융 평가에 쏠렸다. 기술이 있지만 담보나 보증이 없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자는 기술금융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술신용대출이다. 정부가 이 실적을 평가해 은행에 갈 정책자금을 배정한다. 임직원 성과보상에도 반영한다. 종합상황판까지 만들고 실적을 매달 공개한다. 이 상황에서 은행이 기술금융 실적 경쟁을 벌이지 않으면 이게 더 이상한 일이다.

8월 말 7000억원대였던 기술금융 실적이 9월 말 1조8000억원, 12월 말엔 8조9000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8월 말 1500여건인 대출 건수는 12월 말 1만440여건으로 급증했다. 실적 경쟁 덕분에 은행 대출 문턱을 넘지도 못했던 중소벤처 기술기업이 조금 살 만해졌다.

그런데 의문이 꼬리를 문다. 기술기업이 이렇게 많았던가. 그동안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가. 숫자는 왜 갈수록 늘어나는가. 수상하다.

은행 중소기업 대출 추이를 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지난해 하반기 주요 은행 중소기업 대출은 상반기보다 고작 0.5%가 늘어났다. 그 사이 기술신용대출은 급증했다. 중소기업 일반대출 일부가 기술신용대출로 둔갑했다는 방증이다. 은행이 거래 중소기업에게 기술신용정보제공기관 평가서를 받도록 유도하는 이른바 ‘대출 갈아타기’가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 압박과 기술신용대출 부실 우려 사이에 낀 은행이 찾아낸 꼼수다.

기존 기술기업만 끌어들인 실적 부풀리기라면 그나마 낫겠다. 기술과 무관하게 기술신용대출을 받은 기업이 꽤 있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두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기술신용대출 기업 중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기업이 3분의 1을 넘었다. 정부는 기술금융 실적에 신규 거래 기업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은행이 기술평가서를 제대로 살폈는지 검증해야 한다. 자칫하면 무늬만 기술기업만 양산한다.

금융위원회가 오는 28일 ‘은행 혁신성평가’ 1차 결과를 발표한다. 보수적 금융관행개선(50점), 기술금융(40점), 사회적 책임이행(10점)로 나눠 은행별 성적표를 공개한다. 기술금융 부문 평가엔 공급규모(20점)뿐만 아니라 기술금융역량(10점), 기업지원·신용공급(각 5점)과 같은 정성적 평가도 있다.

그런데 인센티브는 종합평가 결과를 따른다. 부문별 평가와 세부 질적 평가에도 따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실적을 부풀인 은행엔 불이익도 줘야 한다. 그래야 은행이 양적 경쟁에 골몰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해 기술금융 실적도 부족하다고 올해 20조원으로 늘리겠다는 정부다. 과연 질을 꼼꼼히 따질지 의문이다.

시중 자금 물꼬를 기술기업계로 튼 것만으로 기술금융 정책은 좋은 점수를 땄다. 그래도 은행 행태와 정부 부실 검증을 보니 최종 평가를 최대한 늦춰야겠다. 정부가 이미 딴 점수라도 까먹지 않으려면 중간 평가를 통해 기술금융 정책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시늉만 하다가 정부가 바뀌면서 사라진 녹색금융 꼴을 면할 수 있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