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에너지 신저가 시대와 신산업 위기

[이슈분석]에너지 신저가 시대와 신산업 위기

태양광·풍력으로 대표되는 신재생에너지 업계에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라는 목표가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 단가가 전통 화석연료 발전과 같아지는 기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업계는 이를 극복하는 순간 발전 시장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시장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에너지 시장도 마찬가지다. 많은 업계 종사자가 그리드 패리티를 목표로 노력했고 화석 연료 가격 상승과 신재생 분야 기술 발전, 여기에 배출권 등 기후 변화 비용 변수가 더해져 목표 달성이 눈앞에 왔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전력 도매가격과 국제 유가 동반 하락, 여기에 정부마저 다시 에너지 가격 인하 기조를 내비치면서 기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커지는 에너지 신산업 위기론

에너지 신산업 위기론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공급 확대에 따른 전력 도매가격 하락, 저조한 경제 성장률, 저유가 상황까지 겹치면서 에너지 신산업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산업계에서는 앞으로 과거와 같은 고유가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에너지 신산업으로 꼽히는 신재생 에너지, 스마트그리드, 전기차 등이 각광받는 배경이었던 기후변화 이슈도 과거보다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다. 국가별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배출권거래제 등 관련 규제도 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전통 화석연료의 대체재 역할로 키워 온 신재생에너지, 고효율 에너지 기술, 스마트 그리드 등 신산업의 설자리가 다시금 좁아지고 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에너지 신산업은 국내 산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였다. 지난해 9월 대통령 주재 ‘에너지 대토론회’에서 신산업 육성 계획이 발표됐고 그 직후 UN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그 의지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국제 유가가 본격적인 하락 곡선을 그리며 지금의 위기론이 시작된 기점이기도 했다.

문제는 에너지 신산업 정책이 과거 에너지가 부족했던 상황에 설계돼 현재 저가 기조에 대응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IT와 에너지, 그리고 다른 산업과의 융합으로 새로운 전력 절감 모델을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뒀는데 지금은 공급이 넘치고 가격은 낮아지는 상황이다. 더욱이 저성장에 빠진 기업의 투자는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

원가 경쟁력만으로는 에너지 신산업이 전통 산업을 넘어설 수 없게 된 상황이다. 특히 그동안 신산업 분야는 시장 경쟁 환경보다는 정책적으로 유지되면서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사례로 언급한 신재생 산업도 마찬가지다. 아직 국내 신재생 업계에 그리드 패리티는 먼 얘기며 시장도 정부 보조금과 규제가 이끄는 모양새다. 고효율 에너지 솔루션 시장도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 지원 등의 역할이 컸다.

◇에너지 신산업 포퓰리즘 극복해야

그동안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에너지 산업계의 침체 분위기는 전력 시장을 시작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공급에서는 신재생에너지가, 수요에서는 고효율 설비 투자가 모두 가격 이슈에 발목을 잡혀왔다. 발전사들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로 신재생 투자를 늘렸지만 이를 발전원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도매 요금 상승이 소매 요금 인상을 불러올 것을 우려하는 정부가 이를 정책적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도 마찬가지다. 제도적으로는 연료비 변동 폭이 전기요금에 반영되도록 했지만 소매 전기요금 영향을 줄이고자 일부 인상 요인은 미수금으로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밖에 유연탄 개별소비세, 전원설비 주변 지원 확대 등 여러 에너지 가격 인상 요인이 있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에너지 소매요금을 동결시키면서 표면적으로는 국민 복지, 제조업 환경 개선 등 효과를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력 시장의 가격 체계를 왜곡하고 에너지 신산업 성장 동력을 잃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에너지 신산업을 키운다고는 하지만 정작 이를 막는 가장 큰 장벽은 다름 아닌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인 셈이다.

지난해 말에는 에너지 신산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터져 나왔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유가 하락과 관련해 대통령이 직접 전기와 가스요금 인하를 언급한 것이다. 그 이후 가스요금은 바로 인하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에너지 업계는 이에 대해 신산업 육성의 명분 약화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전기요금 현실화와 이를 활용한 수요조절이 에너지 신산업 추진의 핵심 축이었기 때문이다.

업계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서도 에너지 신산업 육성 기조는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에너지 가격 현실화도 계속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다. 과거 전력이 부족하고 고유가 시절에 그 원가를 가격에 반영하지 않은 만큼 지금 저유가 상황에서 인하 명분도 없다는 의견이다. 지금 시기는 가격 인하가 아닌 원가가 실제 에너지 가격으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에너지 업계는 에너지 요금 인하 가능성이 있으면 낮춰야 하지만 포퓰리즘적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에너지 요금 현실화가 지연되면서 신산업이 성장하지 못하게 되면 향후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에너지 부족 위기에 같은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가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며 “우리는 고유가 시대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지금을 에너지 산업 체질 개선의 시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변수 요인과 현황 [자료: 업계 취합]>


에너지 가격 변수 요인과 현황 [자료: 업계 취합]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