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Now or Never”

[데스크라인]“Now or Never”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정부의 ‘실적 요구’로 인해 새해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당장 내놓을 건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정부 예산을 쓰면서 마냥 뭉개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출연연 역할과 임무의 근본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논의의 시발점은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과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과학기술계 노동조합 등을 중심으로 출연연을 기타 공공기관에서 제외하자는 목소리다.

사실 정부가 정해놓은 공공기관 분류 유형에 따르면 출연연은 교육연구, 공공의료, 공연전시, 분쟁조정·법무, 국방안보, 체육단체, 복지구호, 국부펀드, 그 외 기관 등과 함께 기타 공공기관에 포함돼 있다. 공공기관은 시장형, 준시장형, 기금관리형, 위탁집행형, 기타 등 크게 5개로 분류된다.

기타 공공기관 수는 총 178개다. 그 가운데 과학기술계는 21개다. 가장 수가 많은 ‘그 외’ 분류에는 한국수출입은행이나 강원랜드 같은 기관이 총 78개 있다.

문제는 출연연 상급기관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일부 변형된 방법을 적용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익을 내는 다른 기관과 제도 적용이나 평가기준이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관장 연봉이 다른 공공 기관장에 비해 많은 것도 아니다. 다른 기관장들은 대부분 경영정상화 차원에서 하향 조정됐어도 보통 2억~3억원을 받는다. 하지만 출연연 기관장은 이들의 2분의 1에서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출연연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고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연구풍토 조성이 선행돼야 하지만 여전히 구호에 그치고 있다.

답답한 현실은 또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이다. 성과연봉제 확대와 업무 저성과자 퇴출제(2진아웃) 도입 등이 골자다. 그러나 새로울 건 없다. 이미 유사한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출연연엔 연속 3년간 ‘D-D-D’ 평점을 맞으면 퇴출되는 3진 아웃제가 있다. 이를 ‘D-D’로 바꿔 2진 아웃제를 도입한들 실효성이 없다면 무슨소용인가. 시스템이나 제도, 정책이 없어서 일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운영이 제대로 안 되는 풍토 때문이다.

최근 ETRI가 ‘이대로 간다면 자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생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획기적인 경영혁신안을 준비 중이다.

A부터 Z까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뜯어고쳐야 ‘산다’는 인식 아래 대대적인 정신 변혁을 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 틀대로 늘 해오던 인사선발부터 개방형으로 바꿔 의식혁명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나’라는 주인의식도 명제로 던져 놓을 계획이다. 이를 테면 ‘내돈’이라면 그렇게 쓸 것인지, 내 식구, 내가족이라면 그렇게 할 것인지, 내 집이라면 그렇게 전기를 펑펑 쓸 것인지 등을 생각해보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자는 것이다. ETRI 이노베이션의 시작점을 ‘나’로 보고 있는 것이다.

출연연은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행정자치·법무부 등 8개 부처 업무보고에서 강조했던 얘기대로 “Now or Never”(지금 안 하면 안 된다)를 실천하려 몸부림치고 있다.

정부도 출연연에 대해 줄 것은 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출연연 공공기관 제외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