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미래 책임질 R&D혁신작업 `따로따로`…중복·충돌 우려

자칫 중복되거나 부처 간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 나와…

국가 미래가 걸린 정부 연구개발(R&D) 혁신작업이 뚜렷한 원칙 없이 복수 부처에서 각각 추진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R&D 혁신안을 마련 중인 가운데 기획재정부가 재정 효율화를 목적으로 또 하나의 R&D 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다 할 공조체계도 구축하지 않은 채 ‘투트랙’ 형태로 진행되면서 자칫 작업이 중복되거나 부처 간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미래부와 기재부가 중심이 돼 관계부처와 함께 R&D 혁신방안을 각각 준비하고 있다.

미래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정부 R&D 혁신방안을 수립 중이다. 미래부는 국가 R&D 투자가 규모 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성과 측면에서는 미흡한 점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래부는 지난 28일 올해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달 중 혁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오는 4월 국가재정전략회의 상정을 목표로 별도의 R&D분야 혁신안을 짜고 있다. 미래부와 마찬가지로 R&D 투자가 양적으로는 급증했지만 투자효과가 낮다는 문제점에서 출발했다. 옛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 R&D전략기획단을 만드는 등 R&D에 관심이 많았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직접 혁신방안을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말 미래부·산업부·중소기업청 등 관계부처와 R&D 심층평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핵심 내용은 3월께 나올 외부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금은 미래부 등과 공조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재정전략회의 전에는 같이 모여 하나의 방안을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아직 각각의 혁신안에 주무 부처 간 관계 정립은 안 돼 있다”면서 “미래부 중심의 혁신방안은 예정대로 2월께 발표해 먼저 시행하고, 이후 재정전략회의 때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 R&D기능 혁신이라는 같은 사안을 놓고 서로 다른 부처가 거의 동시에 혁신작업을 진행하면서 효율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두 부처가 유사한 결론을 내놓으면 행정력 낭비 문제가, 상이한 결론을 내놓으면 원점에서 2개 안을 다시 검토·절충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기재부는 R&D 심층평가와 별개로 R&D 전반을 논의하는 관계부처 차관급 협의체 구성도 추진 중이다.

정부 내에서 R&D 혁신작업이 서로 융합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상대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자리잡고 있다. 기재부 내에는 R&D 부처가 직접 혁신안을 만들면 정부 R&D 지원금의 직접적인 수혜자면서 혁신대상이기도 한 출연연이나 기업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반대로 R&D 부처에는 기재부가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기술 개발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단기 재정효과에 치중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실패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미래 핵심기술 개발 노력을 등한시하고 즉시 성과도출이 가능한 중하위 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기재부가 타 부처에 비해 R&D 분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구 현장 종사자들은 같은 목적을 지닌 정책이라면 서로가 보완책을 마련해 시너지를 모으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기관 고위관계자는 “투자 효율화 측면에서 접근하면 R&D 특성이 반영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부처끼리 사전에 조율해 R&D 혁신안을 만들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