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근거리 무선통신 팹리스 ‘레이디오펄스’ 미국에 팔렸다

지그비(ZigBee) 기술을 개발해온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레이디오펄스가 미국 반도체 기업 IXYS에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사물인터넷(IoT) 시장이 떠오르면서 지그비·블루투스·와이파이 등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해외서 제대로 경쟁하기 위한 결정이다.

국내 근거리 무선통신 팹리스 ‘레이디오펄스’ 미국에 팔렸다

왕성호 레이디오펄스 대표는 26일 “최근 미국 IXYS와 지분 100%를 양도하는 인수 계약을 맺었다”며 “이번 인수로 그동안 진입하지 못했던 해외 시장에서 제대로 기술 경쟁을 펼치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IXYS는 통신·산업·의료 등에 사용하는 전력반도체와 고전압집적회로(HVIC)에 특화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3억3630만달러(약 3725억원)다. 이번 인수 규모는 1650만달러와 성과 연동 600만달러를 합쳐 총 2250만달러(약 250억원)다.

레이디오펄스는 고주파(RF), 베이스밴드, 디지털 모뎀, 마이크로컨트롤러 등을 집적한 지그비 단일 칩을 양산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무선통신 기술 개발이 취약한 국내에서 2003년 창업 이후 꾸준히 지그비 기술 개발에만 매진했다. 홈 네트워크 시장이 열리면서 큰 성장을 기대했지만 해외 경쟁사 대비 성장폭은 미미했다.

왕성호 대표는 “국내외 반도체 기업과 전략적으로 협업해 해외 진출을 노렸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며 “지난 3년간 매출 80억원대에서 정체됐는데 해외 경쟁사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며 자칫하면 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근거리 무선 네트워크 기술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꾸준하다. 최근 삼성전자가 사물인터넷 플랫폼 기업 스마트싱스, 인텔이 사물인터넷용 칩 제조사 랜틱, 실리콘랩스가 블루투스 기술 기업 블루기가테크놀로지를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퀄컴이 초고속 무선통신기술 기업 윌로시티를 인수하며 사물인터넷 시장 공략에 고삐를 당겼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기술 장벽이 높은 탓에 무선 기술 분야의 인수합병 사례가 거의 없다. 인티그런트가 2006년 아나로그디바이스에, 에프씨아이가 2007년 대만 실리콘모션에 인수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왕 대표는 하이닉스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2003년 레이디오펄스를 창업했다. 창업자로서 성공적으로 엑시트를 했고 피인수 이후에도 레이디오펄스에서 계속 근무한다.

그는 “레이디오펄스의 기술력은 자신있지만 해외 영업·마케팅이 부족한게 늘 한계였다”며 “창업자의 욕심으로 좋은 기술을 계속 들고만 있으면 빛을 못 보고 땅에 묻히게 될 수도 있기에 해외서 경쟁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또 “주주명부의 국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 고용 효과가 발생하고 법인세를 내며 사회에 기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레이디오펄스가 IXYS와 합친 후에도 한국에서 계속 사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은 스마트홈의 LED 조명 제어, 통합 무선 리모콘, 스마트 에너지 시스템, 보안,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KT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사물인터넷 시장에서 전체 네트워크 중 근거리 무선통신 비중은 오는 2020년 69.2%를 차지할 전망이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