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디지털 사이니지, 뒤처진 규제가 발목

[기자수첩]디지털 사이니지, 뒤처진 규제가 발목

‘시장은 시속 200㎞로 속도로 달리는데, 기업은 120㎞로 바뀌고, 정부 규제는 30㎞로 따라온다.’

앨빈 토플러는 시장 변화 속도가 가장 빠르고, 기업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 속도와 동조화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설명했다. 사회 인프라 중 일반적으로 정부 규제 변화가 제일 더디다. 그는 특정 산업이나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업 변화 속도·규제 격차가 최소화될 것을 강조했다.

한국인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글로벌 기업은 이 때문에 한국을 테스트 마켓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규제는 항상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후진적인 정치 시스템이 새로운 산업 태동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가로막는다.

지금 우리나라 수출 산업은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다. 조선·철강·석유화학 등 굴뚝 산업은 물론이고 스마트폰·TV·디스플레이 등 IT 산업도 중국에 역전 당하기 직전이다. 새로운 먹거리 산업이 절실하다. 경제 재도약을 위해 차세대 성장 산업이 나와야 한다.

웨어러블·사물통신(IoT)에 이어 디지털 사이니지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흉물스러운 광고판에 IT가 가미되면서 첨단 미디어로 재탄생했다. 우리나라는 IT 분야 경쟁력을 기반으로 이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인쇄회로기판(PCB)·터치스크린패널(TSP)·카메라모듈·전원공급장치(PSU) 등 고급 소재·부품 수요를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시장에 한국 디지털 사이니지 제품이 보급되면 광고뿐 아니라 영상 콘텐츠를 판매하는 ‘플랫폼 비즈니스’도 가능해진다. 박근혜정부가 강조하는 미래창조 산업에 가장 적합한 제품인 셈이다.

문제는 시대에 뒤처진 규제다. 지난해 정부는 ‘한국판 뉴욕 타임스 스퀘어’를 만들겠다며 관련 법안 개정을 추진했다. 디지털 사이니지는 기존 전광판보다 밝기·시간·주변 경관에 맞는 심미성 등을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다. 첨단 산업이 과거 산업의 틀에서 규제되는 것은 불합리하다.

현재 관련 법안 개정안은 정치 문제로 국회에 계류돼 통과조차 불투명하다. 호박이 절로 굴러 들어왔는데 발로 뻥 차버리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