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젊은 그들' 제 6회

사진 : 김유림 기자
사진 : 김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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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길이 날린 그토록 힘차게 푸르른 벼린 날의 도끼는 피를 묻힌 채 너른 심성(心性)의 마당에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누군가 그 도끼를 그토록 힘차게 푸르른 손으로 다시 집어들었다.

1898년(광무2년)에 모집된 조선 최초의 군 장교 양성기관인 무관학교는 오늘 날의 군사학교와 같은 성격이었다. 1897년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꿈에 따라 서구식 제도를 도입하면서 신식 군대의 장교 양성이 필요했다. 피 끓는 청춘이었으나 노비로 전전해야 했던 수많은 젊은 그들은 무관학교에 입학해서 진짜 남자, 진짜 사람이 되어 일본에 맞서 싸우길 열망했지만, 실상 무관학교는 양반가의 자제만 입학할 수 있었다. 군사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당시 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구 열강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고 고종(高宗)은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각국으로 부터 무기들을 많이 구입했었다. 그러나 사용법을 몰라 무기들은 군대에 그냥 방치했었다. 후에 고종은 무관학교를 세우며 외국인 장교들로 하여금 직접 군사교육을 실시하게 했다. 당시 젊은 지식인들이나 청년들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청춘의 장(場)이 없었다. 그만큼 가혹한 시대였다. 이미 과거제가 폐지된 후라 관리가 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문학교를 나온다 해도 그저 그런 하급 관리가 되는 정도였다.

게다가 일본은 한국을 침탈해 오면서 조삼모사(朝三暮四)한 양반들을 회유했다. 일정한 직위를 보장하면서 일본의 협조하도록 한 것이다. 이른바 한참 후에 불리우게 될 친일파였다. 많은 양반들이 일본의 회유에 넘어갔다. 그러나 일본과 손잡지 않거나 일본에 적대적인 양반들과 양반의 자제들은 사실, 관직에 나가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나라를 일본의 억압에서 구해야겠다는 일념과 그리고 청춘을 불사를 뜨거운 피, 그리고 미옥에 대한 감정들이 혼재된 상태로 어설프게 준비되어 있던 성준의 대한제국 행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나라를 일본의 억압에서 구하는 것도 자유였고 청춘을 불사르겠다는 뜨거운 피도 자유였고 미옥의 사랑도 자유였다. 성준에게는 자유가 필요했다. 자신의 정신적 스승인 권기주 선생이 제안한 아나키즘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었다. 성준은 이미 출사표를 던지고 있었다. 스스로 당당한 주체가 되어 살아보고자 하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자유의 신념이었다.

이 무렵, 일본군은 한성에 진입해서 *주차사령부(주둔군사령부)를 설치시켰다. 드러나기 시작한 일제의 야욕은 많은 젊은 그들의 피를 끓게 만들고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 후, 성준은 좀 더 성숙해있었다. 이제 어머니로부터 완전하게 독립되어 있었다. 자신의 원천적인 고향을 떠날 채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쉬이 허락할 리가 없었다. 또한 아직도 미옥에 대한 도도한 감정의 흐름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미옥의 운명이라도 구하고자 했다.

“네가 영광 김씨의 종손임을 알고도 그런 실망스런 결정을 한거냐? 종손은 이 집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자손을 생산해야 한다. 그게 너의 운명이다.”

김시원은 언성을 높이지 않으셨다. 마치 말을 차곡차곡 쌓듯이 말씀하셨다. 마치 오래 전 조상들이 하나씩 쌓아왔던 말일 것이다. 그래서 흐트러짐이 없이 단단했다. 성준도 단단해지고 싶었다.

“그럼 미옥이를 다시 데려다 주십시오. 아버님.”

김시원의 얼굴에서 여러 가지 감정의 굴곡이 차례차례 지나갔다. 김시원은 감정의 추이(推移)를 기다렸다. 그만큼 분노를 담는 그릇은 컸다.

“안된다.”

짧고 단호했다.

“그럼 전 무관학교로 가겠습니다.”

덩달아 짧고 단호했다.

“안된다.”

김시원은 더욱 단단해졌다. 성준은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커졌다.

“그럼 제가 무엇이 되길 바라십니까? 아버님, 많은 양반 자제들이 일본의 꼬임에 넘어가 일본의 개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개 노릇을 하길 바라십니까? 어머님의 장례식에 그들이 행한 패악을 보시고도 지금 저를 말리시는겁니까?”

김시원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보다 단단해지고 커진 아들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평생 완고한 유학자로 살았지만 그도 아들을 사랑하는 그저 필부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미옥이는 안 되었다.

“그럼 혼인하고 가라.”

김시원은 그 흔한 한 숨도 없었다.

“네에?”

성준은 잠시 심장이 쿵쿵 뛰었다. 미옥이와 혼인을 허락했다고 잠시 착각했던 것이다.

“미옥이를 제게 데려오시는 겁니까?”

김시원은 재떨이를 던지셨다. 재떨이는 성준의 이마를 맞고 튕겨나가 문살의 나무오리를 부수고 떨어졌다. 성준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성준은 개의치 않았다.

“우리 집안은 노비와 혼인하지 않는다.”

성준이 벌떡 일어났다. 대단히 건방진 도전이었다.

“이놈이.”

김시원은 아직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아버님, 그날의 우리는 무엇이었습니까? 어머님의 장례식을 난장(亂場)으로 만든 일본놈들에게 우리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죄있는 그들을 벌줄 수 있었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벌주겠다며 죄없는 노비를 끌고갔습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누구란 말입니까?”

성준은 자신의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기형적인 시대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저 노비를 끌고갔을 뿐이다.”

김시원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노비는 말할 가치도 없다는 뜻 이었을 것이다.

“아니요, 미옥이와 우리는 다를바가 없습니다.”

성준은 더욱 굳건히 서있었다.

“우리는 대대로 양반 가문이다.”

김시원은 벌떡 일어나 굳건히 섰다.

“그건 양반 가문의 입장에서 보는 내용입니다.”

김시원은 비로소 눈빛이 달라졌다. 아들 성준의 배신을 당면(當面)하고 있었다.

“그럼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누구일까요?”

성준의 음성은 점점 커졌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양반들도 그들의 노비일 뿐입니다. 왜 모르십니까?”

성준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아버님, 그날 우리는 노비였습니다. 노비였습니다. 결국 죽은 몸이었던 나의 어머니도 노비였습니다.”

성준은 흐느껴 울었다. 아버지는 비로소 주춤했다. 서로 위로도 없이 한참 정적이 흘렀다.

“그럼 혼인을 해라. 네 어미가 본 여자다. 그리고..”

성준은 감히 아버지의 말씀을 잘랐다.

“아버님...”

“미옥이는 정실은 안된다.”

성준은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버님, 미옥이도 사람입니다. 아버님.”

“아니다. 노비다.”

김시원은 역시 흐트러짐 없이 단단했다. 차곡차곡 쌓여진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이었다. 성준은 밖을 뛰쳐나갔다. 김시원은 털썩 주저앉았다. 집사가 부리나케 뛰어들어왔다.

“저어...”

집사는 차마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난 괜찮다. 어서 가라. 어서 가서 성준이를 챙겨라. 그 아이를 지켜라.”

“예.”

집사는 다시 급히 뛰어나갔다. 뒤이어 덕길이가 들어왔다. 덕길은 흘깃 보기에도 지나치게 불량했다. 그의 손에 그토록 힘차게 푸르른 벼린 날의 도끼가 들려있었다.

소설가 하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