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젊은 그들' 제 7회

사진 : 김유림 기자
사진 : 김유림 기자

7

“넌 뭐냐?”

어디선가 살기의 바람이 스산했다.

“미옥이 어디 있습니까?”

덕길이 들고 있는 힘차게 푸르른 벼린 날의 도끼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졌다.

“뭐라? 이 노비 놈이.”

김시원의 목소리는 이미 조심스럽게 떨고 있었다.

“미옥이 어디 있습니까?”

덕길의 눈빛 조차 아예 핏빛이었다. 김시원은 덕길의 핏빛 눈의 살기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덕길이 들고 있는 푸르른 벼린 날의 핏빛 도끼의 살기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미옥이를 향한 덕길의 비극으로 치닫는 집념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덕길을 통해서 자신의 아들 성준의 미옥에 대한 결코 끝나지 않을 미련한 인생을 보았기 때문에 무서웠다. 김시원은 뜨악하게 버티고 있는 덕길에게 들고있던 곰방대를 집어던졌다. 그러나 덕길은 날아오는 곰방대를 턱 잡아챘다. 곰방대를 우지끈 부러뜨렸다. 김시원은 자신의 뼈마디가 부러지는 듯 욱신했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노비 놈에게 밀리기 싫어서였다.

“네 놈은 처음부터 나의 노비였고 앞으로 계속 나의 노비일 것이다.”

김시원의 으름장에도 점점 살기가 미어터지고 있었다. 덕길은 피식 웃었다.

“나는 처음부터 내 부모의 자식이었고 앞으로 계속 내 부모의 자식일 것이오.”

덕길도 양반 놈들에게 밀리기 싫었다.

“너같은 천한 노비놈에게 천한 걸레같은 미옥이를 주는걸 내가 왜 마다하겠느냐? 나도 모른다. 그년 소식을.”

덕길은 천한 노비였지만 그의 행동은 천하지 않을 터였다. 그는 성큼 김시원에게 다가갔다. 김시원은 꿈쩍하지 않고 덕길과 맞섰다. 그러나 이 또한 이미 덕길에게 지고 있음을 당장은 몰랐다.

“미옥이같은 천한 노비 년을 당신의 아들 김성준에게 위안부로 던져주었소? 그런거요?”

이제 김시원의 눈빛이 핏빛이 되었다.

“위안부도 아깝다. 그저 아무 놈 품에 떠돌다 죽을 년이다. 양반의 위안부로 산다면 그 또한 노비 신분에 영화거늘.”

덕길은 입술을 실룩거렸다. 그의 입술에서 푸르른 벼린 날의 도끼가 돋았다.

“난 당신을 일본 놈의 위안부로 던져 주고싶소.”

“뭐라?”

김시원은 드디어 흥분했다.

“감히 노비 놈 주제에? 뭐라?”

덕길은 이제 김시원과 얼굴이 바짝 맞닿아 있었다. 그가 목을 조르거나 머리통을 부수거나 도끼로 어이든 찍을 수 있었다. 김시원은 아직 힘있게 맞서고 있었다. 부릅 뜬 눈빛이 부리부리했다. 덕길은 조용히 속삭이듯 읊조렸다.

“말씀해 주십시오. 양반. 어서요,”

김시원은 양반들이 원래 그렇듯 함부로였다.

“나도 모른다, 주재소 놈들이 어디로 데려갔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그들의 노리개나 되겠지. 그러다 망가지면 죽이겠지. 그게 그년의 인생이다. 원래 힘없이 태어나면 죽는것이오. 힘을 기르지 못했다면 또한 죽는 것이다.”

덕길은 김시원을 우악스럽게 밀쳤다. 김시원은 억지로 병풍에 기대어 엉거주춤 있었다.

“이 나라는 모두 미쳤어. 너희 양반놈들이나 일본놈들이나 다를게 없다는거지. 우리에게는. 그저 주인만 바뀐다는거지, 너희 양반들이나 일본놈들이 하는 짓거리가 똑같거든?”

김시원은 비로소 당황했고 비로소 덕길이 무서웠다. 덕길의 분노는 그 크기가 가늠되지 않았다.

“집사...”

김시원은 머뭇거리며 겨우 뱉었다. 그러나 그 말이 밖에서 들릴리 없었다.

“만약 누군가 미옥이 털끝 하나 건드렸다간 내가 너의 머리통부터 뽀개버릴 것이다.”

덕길은 그렇게 말하고 홱 나가버렸다. 김시원은 그제서야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허허...허허.”

집사가 달려들어왔다. 집사가 김시원을 부축하자 집사를 있는 힘껏 밀쳐버렸다. 그바람에 집사는 뒤로 나자빠지면서 바닥에 쿵쿵 세게 머리를 박았다. 집사는 눈을 부릅 뜬 채 일어나지 못했다. 김시원은 집사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더러운 노비놈들,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다니...”

집사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살짝 움직였다. 하지만 곧 그마저 멈추었다.성준은 무관학교로 가지 않았다. 주재소 근처를 돌고 있었다. 미옥이 주재소에 있다고 확신한 그로서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먼저 미옥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혼자 몸으로 총을 갖고 있는 일본 순사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답답했다. 성준은 밤이 되도록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언덕에 몸을 숨기고 주재소를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잠깐 잠이 들었는지 누군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눈을 떴다. 돌아보니 덕길이었다. 덕길은 어색하고 낯선 미소를 지어보였다. 처음 보는 미소였다.

“덕길아. 네가 여길...”

“도련님과 똑같은 마음이오.”

덕길이 옆에 앉았다. 덕길의 허리춤에 작은 도끼가 꽂혀 있었고 손에는 일본 순사들이 갖고 다니는 소총이 있었다. 성준은 놀랐다.

“이 소총은 어디서 났느냐?”

덕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성준은 또 물었다.

“미옥이를 구할 방도가 있느냐?”

“그 방도가 곧 도착할 것이오.”

덕길은 그저 주재소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을 떼기라도 하면 미옥이 죽을 것 처럼 눈길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그때였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곧 십여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나타났다.

“누구냐?”

성준은 덕길을 쳐다보았다.

“미옥이를 구할 방도라고 하지 않았소?”

성준은 청년들을 보았다. 한결같이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하지만 본질은 선한 눈빛을 가진 선한 누군가의 아들들이었다.

"악."

주재소 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성준도 덕길도 긴장했다.

“미옥이요.”

성준과 덕길은 비명소리가 들리는 주재소 쪽만 보고있었다.

“잘못하면 다 죽는다.”

성준은 걱정이 앞섰다.

“도련님은 살아서 영화를 보겠지만 우리네는 살아서 똥통을 보고있소. 뭐가 문제란 말이요? 사는게 별거요? 하루라도 사람답게 자유롭게 살다가 죽으면 그뿐이오.”

덕길이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미옥의 찢어지는 비명이 다시 밤하늘을 아프게 가르고 있었다. 성준의 가슴도 아프게 갈랐다. 덕길의 가슴도 아프게 갈랐다.

순간, 덕길과 청년들은 언덕을 후다다 내려갔다. 얼마나 재빠른지 그저 들짐승으로 보였을 뿐이다.

덕길은 무작정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좁은 주재소 안은 퀘퀘한 피냄새와 살냄새로 진동을 했다. 그곳에 미옥은 벌거벗고 누워있었다. 젖가슴과 음부를 모조리 드러내고 있었다. 일본 놈 두 놈이 미옥의 양 팔을 잡고 있었고 미옥의 양다리도 두 놈이 벌리고 있었다.

주재소 소장은 바지를 어정쩡 내리고 그 놈의 별볼일 없는 물건을 꺼내어들고 있었다. 덕길은 먼저 주재소 소장의 물건에 도끼를 던졌다. 주재소 소장은 비명을 지를새도 없이 피칠갑을 토해내며 쓰러졌다. 다른 놈들도 미옥을 잡았던 손을 놓고 소총부터 찾았다. 하지만 이미 노리개를 갖고 놀 생각만 하던 놈들이 쉽게 소총을 잡을 기회는 없었다. 덕길과 청년들은 그들을 검으로 단박에 찓러죽였고 소총부터 챙겼다. 덕길은 미옥의 옷을 입히고 미옥을 품에 안아들었다.

"휘이익."

일본놈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덕길은 소리쳤다.

“빨리.”

소설가 하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