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구글의 배신

[데스크라인] 구글의 배신

궁금하다. 왜 구글이 알뜰폰 시장에 진출할까. 한국에선 5년째 적자 사업인데 말이다. 돈 안 되는 알뜰폰에 베팅하는 이유는 뭘까. 남 몰래 경천동지할 비즈니스 모델이라도 발견한 것일까.

지난주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5’ 관련 뉴스가 쏟아졌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뉴스는 ‘베일을 벗은 갤럭시S6’였다. 하지만 개인적인 토픽은 ‘구글의 알뜰폰 시장 진출’이었다.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구글은 이미 휴대폰 제조사 모토로라를 인수한 뒤 중국 레노버에 되팔았다. 하지만 모토로라 특허 대부분을 보유 중이다. 마지막 미지의 땅인 네트워크(알뜰폰) 시장까지 밟으면 그야말로 ‘구글왕국’을 완성한다.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단말)’로 이어진 정보통신 생태계를 모두 섭렵한 유일무이한 기업이 된다. 구글이 노리는 것이 이런 명예로운 타이틀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구글은 휴대폰 제조사, 통신사 등과 협업을 지향했다. 그것이 훨씬 실리적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통신사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표변했다.

구글 변심에 문득 떠오른 기업이 있다. 바로 동영상 스트리밍(VoD)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도 일종의 배신을 했다. 지난 2013년 자체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전격 발표했다. 콘텐츠 유통만 하던 플랫폼 사업자가 콘텐츠 제작에도 직접 뛰어들자 콘텐츠 제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넷플릭스는 그 이후 아예 대형 스튜디오까지 갖추고 히트작을 쏟아냈다.

넷플릭스가 직접 콘텐츠 제작에 나선 이유는 분명했다. 플랫폼 사업을 더 잘하기 위해서였다. 자체 콘텐츠를 보유하면서 콘텐츠 사업자와 판권료 협상에서 유리해졌다. 불안한 콘텐츠 외부 의존 메커니즘에서도 벗어났다. 그 결과, 이젠 말 안 듣는 스튜디오에 계약하지 않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을 수 있게 됐다. 전통적인 미디어 시장 질서가 붕괴됐다.

구글 알뜰폰 진출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구글이 보유한 유튜브, 검색 등의 서비스를 더 잘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는 것이다. 유튜브 동영상 소비가 늘어나려면 통신료가 내려가야 한다. 유튜브, 검색 이용자가 늘어나면 구글은 광고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결국 구글 전략은 뻔하다. 알뜰폰 사업으로 통신료 인하 경쟁을 촉발하는 것이다. 알뜰폰 자체로 돈을 벌기보다는 핵심 비즈니스를 위해 투자하는 개념이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공짜로 뿌린 것과 똑같은 원리다.

구글발 통신 시장 균열은 예상외로 빠를 수 있다. 구글 알뜰폰 진출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알뜰폰 업체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구글 위력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알뜰폰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들도 알뜰폰으로 대거 몰릴 것이다. 통신사들이 이를 버텨낼 재간이 있을까.

통신사의 생사는 ‘도망가는 속도’에 달렸다. 꼬리 물기 게임과 비슷하다. 구글이 시장을 잠식해오는 속도보다 통신사의 신시장 개척 속도가 빨라야 살아남는 게임이다. 이번 MWC에서 선보인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새 비즈니스에 ‘제트 엔진’을 달아야 하는 이유다. 이젠 우물쭈물하면 바로 아웃이다. 몰락한 노키아 그림자가 통신업계에도 깊게 드리우고 있다.

장지영 정보통신방송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