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고발요청권 첫 발동…산업계 파장은

[이슈분석]고발요청권 첫 발동…산업계 파장은

검찰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SK건설을 기소해야겠다”며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검찰총장이 공식적으로 고발요청한 것은 제도 도입 후 20년 만에 첫 사례다. 전속고발권이 무력화된 공정위만 당혹스러운 게 아니다. 산업계는 검찰 칼날이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와 검찰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에 환영과 우려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20년 만의 첫 ‘검찰총장 명의’ 고발요청

과거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만이 다룰 수 있었다.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기소가 가능한 ‘전속고발권’ 때문이다. 1980년부터 시행된 전속고발권은 공정위가 경제검찰로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우리나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을 바탕으로 각종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공정위에 지나치게 힘이 쏠린다는 지적과 더불어 고발권을 적극 행사하지 않아 불공정 거래 시정이 더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근혜대통령은 후보시절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2013년 국회는 검찰청·감사원·조달청·중소기업청이 고발 요청 시 공정위가 의무 고발하도록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공정위가 고발권을 33년 동안 독점했다는 것은 일부만 맞는 얘기다. 1996년부터 검찰은 고발요청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재량에 따라 거부할 수 있지만, 그동안 실무 차원에서 이뤄진 검찰의 고발요청에 몇 차례 응했다. 지난해 국순당 불공정 행위와 관련 고발요청권을 행사한 게 대표 사례다. 이번이 다른 점은 지난해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으로 검찰 요청 시 고발이 ‘의무화’됐고 처음 공식적인 ‘검찰총장 명의’ 요청이 왔다는 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검 등에서는 그동안 수차례 고발요청이 있었고 검찰과 공정위 간 협력이 이뤄졌다”며 “검찰총장 명의로 요청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고발요청”이라며 애써 담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고발요청은 검찰이 사실상 “공정위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발요청으로 해당 기업이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늘어나면 공정위 대외 신뢰도에 금이 갈 수 있다. 수시로 거론되는 ‘솜방망이 처벌’ 논란 확대도 우려된다.

◇고발요청 계속될까…산업계 “기업 활동 위축”

검찰은 “필요한 범위에서 고발요청권을 행사해 담합범죄를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고발요청권을 앞으로는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고발요청이 잦아지면 기업은 이중, 삼중으로 철퇴를 맞을 수 있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검찰 형사제재와 더불어 의무고발요청 권한을 가진 기관의 또 다른 고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은 하나의 사건으로 여러 송사에 휘말릴 수 있어 자칫 경영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법을 어기면 제재를 받는 게 맞지만 과잉 처벌 분위기가 만연하면 잘못이 없는 기업도 위축되는 게 사실”이라며 “고발요청제는 ‘판결 확정된 사건은 다시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고발요청제를 바탕으로 리니언시(자진 신고자 감면제)에까지 손을 댄다는 생각이다. 리니언시는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한 기업에 과징금을 깎아주는 제도로, 증거 확보가 힘든 담합 사건의 처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검찰은 리니언시로 면죄부를 받은 기업이라도 위법 행위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고발요청제 로 형사제재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리니언시 도입 취지가 무색해져 담합 자진신고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와 검찰이 부정부패 척결에 속도를 내며 공정위도 활동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위법 행위 적발 시 검찰 고발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검찰의 고발요청제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제재를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산업계 일관된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기업 활동을 독려하고 전방위 제재 분위기로 기업을 위축시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검찰 행보가 ‘보여주기’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가 부정부패와 전쟁을 선언했고 검찰이 공정거래조세조사부를 신설한 만큼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는 설명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검찰이 요즘 새로운 사건 추적보다는 과거 위법 행위를 파헤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고발요청권 발동도 이런 맥락에서 활용되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고발이 있어도 정작 검찰은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05년부터 올해 3월초까지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한 사건 중 수사가 진행 중인 사례를 제외한 347건 가운데 검찰이 정식 재판을 청구한 사건은 61건(17.6%)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검찰 처분 절반 이상은 벌금형 선고만 가능한 약식기소(196건, 56.5%)였고, 무혐의·내사종결(37건), 기소유예·입건유예(34건) 등 아예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많았다는 설명이다.

신 의원은 “공정위와 검찰이 엇박자를 내면서 불공정 기업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며 “사정기관의 불협화음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라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