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카로스의 역설`

[데스크라인]`이카로스의 역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외줄 타는 ‘피에로’ 같다. 늘 불안하고, 안쓰럽다.

투입 예산과 받는 연봉에 비해 실적이 초라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는 10년도 넘었다. 마치 비리온상인 듯 바라보는 ‘눈총 감사’는 일상화됐다.

오는 5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와 기획재정부가 합동으로 정부 R&D 혁신방안을 발표한다. 6월에는 출연연 예산구조 개선에 들어간다. 출연연 성과 내라는 것이 기본 논리다.

출연연은 산업화 초기 정부주도 연구개발로 기업 애로에 큰 도움을 줬다. 기업 대신 기술을 개발하거나 개량하는 데 기여했다. 모방연구나 추격형 연구로 큰 성과를 낸 성공모델로 평가한다.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선도형으로 R&D 전략을 수정했다. 모든 게 달라졌다. 하지만 그대로인 게 있다. 정부 주도형 R&D다. 예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나 지금이나 R&D 진행 방식이 달라질 리 없다. 매번 쇄신, 개혁, 혁신 등 겉모습만 달리할 뿐 그대로다.

출연연이 ‘이카로스 역설’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역설은 캐나다 경제학자 대니 밀러 교수가 이카로스 그리스 신화에 빗대 얘기했다. 크레타 섬 미궁에 갇힌 이카로스가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함께 새 깃털에 밀랍을 발라 만든 날개를 달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결국 에게해에 떨어져 죽는다. 이카로스는 태양 가까이 가면 날개가 녹는다는 다이달로스 충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카로스 역설은 과거 성공 요인이 되레 지금에 와선 실패를 불러오는 치명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이론이다.

출연연 맏형 격인 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들여다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KIST는 1966년 설립돼 한국기계연구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이 탄생하는 산파 역할을 했다. 선진기술 추격과 원천기술 개발로 1970~1990년대 국가 발전을 견인했다.

기술경영경제학회 분석에 따르면 이 기간 경제사회적 파급효과는 투입 대비 151배나 됐다. 후반기인 1991~2012년은 13배에 불과했다. 파급효과가 앞단 대비 11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이 분석은 과거 성공 방식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큰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KIST는 지난주 국립중앙과학관에서 핵심개혁과제를 발표했다. 다른 출연연이 수행하지 않는 연구분야 전문연구소를 설립한다는 것이 골자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회 승인을 거쳐 미래부 용인 아래 추진했을 것이다. 그러나 혁신 기대치에는 함량 미달이다. 먹던 반찬 한두 개 빼고 새 반찬 좀 더 추가했다고 새 식단이 되는 건 아니다.

매년 정부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늘고 있지만 효율성은 되레 떨어지고 있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최근 출연연을 돌며 혁신간담회를 진행 중이다. 현장 연구원 목소리를 듣고 연구회 방침을 설명하는 소통의 자리다.

핵심은 성과다. 성과를 냈으면 알리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내년 R&D 예산축소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칼자루를 쥔 기획재정부는 출연연 혁신방향으로 생산성 제고와 신뢰회복을 내걸었다. 투입예산 대비 생산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속내는 예산 줄이기다.

국가 주도 ‘개발국가론’은 혁신의 발목을 잡는 낡은 양식이 됐다. 물론 공공 분야 R&D 필요성이나 정부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퍼스트무버형 연구개발에 맞는 새로운, 파격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조직과 인식도 변해야 하지만 R&D 체계도 분명 한 번 더 도약해야 한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