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포럼]전기차시장, 미래까지 내다봐야

[에너지포럼]전기차시장, 미래까지 내다봐야

어떤 산업이든 시장 형성 과정에서 제조사 간 경쟁은 필연이다. 경쟁을 통해 소비자는 더 좋은 서비스를, 더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시장 경쟁 순기능은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에선 찾아볼 수 없다. 정부의 과도한 ‘전기차 구매 보조금’ 정책 때문이다.

지금 한국, 그중에도 서울 전기차시장은 민간보급 사업에 참여한 후 추첨 받은 소수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이 차량 한 대당 받는 지원금은 많게는 2500만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기차 보조금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미 3년째 가장 높았고, 정부 계획에 따르면 2020년까지도 가장 높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제조사는 보조금 정책만 믿고 마케팅 노력을 하지 않는다.

보조금이 없다면 제조사는 어떻게든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막강한 마케팅 전략을 세운다해도 2000만원 가치 이상의 혜택을 내놓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보조금 없이 전기차를 구매하는 사례는 찾아 볼 수 없다. 일반 내연기관 차량 구매에 따른 영업점 별 다양한 서비스나 할인 혜택도 없다.

정부가 부족한 충전인프라와 비싼 차 가격 때문에 막대한 지원금을 주지 않으면 전기차를 구매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재원은 유한하고, 보조금 정책은 소수 사람밖에 누릴 수 없는 문제가 서서히 드러난다. 일부 사람만 주는 보조금 정책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지속될 수 없다. 이제 정부는 보다 똑똑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보조금이 초기 전기차 시장을 여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장기적인 관점의 스마트한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

운행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금액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혜택, 중고차 시장을 고려한 감가상각이 최소화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다. 우선 전기차 보조금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 지금은 차종을 선택하고 지자체별 민간보급사업에 응모해 당첨되면 반드시 신청한 차량을 구입하도록 돼 있다. 이걸 바꿔 당첨 후에도 차종을 변경할 수 있게 하고, 제조사별 초기 접수율과 실제 계약률을 실시간 공개한다면, 제조사는 고객으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경쟁을 펼치게 될 것이다. 소비자는 차 가격을 흥정하고 부가 서비스를 요구할 기회를 얻게 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충전기 설치 기준도 바꿀 필요가 있다. 전기차 구매자는 정부가 무상 제공하는 전용 충전기 설치를 위해 아파트 입주자회의에서 동의를 얻는 데 어려움이 크다. 차를 샀다고 전용 주차면을 내줄 수 없다는 반감에서다. 공동 재산을 박탈당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해법은 간단하다. 충전시설을 박탈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이도록 하면 된다. 당첨자가 충전기를 소유하는 방식이 아닌, 해당 아파트 공동 소유로 충전시설을 설치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아파트 입주민이 전기차를 구매함에 따라 정부가 충전기를 선물해 준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설치 동의를 받는 게 아니라, 우리 아파트에도 충전소가 들어선다는 인식전환이다.

남산 터널 통행료 무료나 공영 주차장 주차요금 50% 할인 등 혜택을 좀 더 확대하면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관공서와 공영주차장의 전기차 전용주차면 확보나 주차요금 면제, 전기버스만 출입이 가능한 남산타워에 일반 전기차 출입 허용, 난지도 노을공원 등에도 전기차가 다니게 할 필요가 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매년 막대한 보조금 예산을 줄일 수 있다. 지자체나 정부가 나설 수 없다면 민간을 끌어들이는 다양한 방법도 있다. 연료비가 안 든다는 이유로 전기차는 항상 경제성과 결부시킨다.

보조금 혜택으로 소비자가 싸게 구매하면 많이 팔릴 거라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이제 일방적인 물질적 지원보다는 그 이상의 가치를 누릴 수 있는 ‘착한 규제’나 ‘스마트한 혜택’을 정부와 지자체가 고민하기 바란다.

최영석 씨엠네트웍 대표 ceo@cmnetwor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