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메르스 터널 탈출하자

[이슈분석]메르스 터널 탈출하자

지난 5월 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가 처음 발생한 지 50여일이 지났다. 그 사이 180여명이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1만5000여명이 격리(격리해제 포함)되는 등 사실상 국가 비상사태로 확산됐다. 정부 방역체계에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에서는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국내 최대 기업 후계자가 머리 숙여 사죄하는 보기 드문 모습도 연출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메르스 사태가 번지면서 국민 사이에 불안심리가 커졌다. 외출 자제는 내수소비 감소로 이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메르스 환자 추이는 해외 관광객의 한국 여행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관광객뿐 아니라 해외 바이어 발걸음도 끊겼다. 국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무역·투자 관련 행사가 잇따라 취소됐다.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되고 수출마저 부진한 상황이다. 메르스 사태는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메르스 환자 증가 추세가 주춤하다. 신규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날이 더 많다. 정부는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보다 한 단계 높은 ‘주의’로 유지하면서 사태 조기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이대로 정리 국면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아니다. 메르스 후유증은 한동안 우리 경제와 사회의 짐으로 남을 것이다. 아직 고통스러워 하는 환자와 격리자를 보듬는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차제에 보건 당국을 과감하게 혁신하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제는 경제 살리기다. 유가·환율에 그리스발 금융위기까지 변수가 산적한 상황에서 메르스 사태는 우리 경제에 커다란 숙제를 안겼다.

메르스 사태는 6월 한 달 경제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6월이 지나 7월로 접어들지만 상처가 쉽게 아물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7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가 81.5로 지난 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기전망지수는 100보다 높으면 경기 호전, 100 미만이면 경기 악화를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르스 사태로 정부 정책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중동 4개국을 순방하고 ‘제2의 중동 붐’을 천명했다.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같은 달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중동순방 성과 이행 및 확산 방안’을 안건으로 올려 후속 대책에 착수했다. 일각에서 현실성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중국에 이은 신시장 발굴이 절실한 우리나라로서는 나름 합리적인 대안이었다.

‘메르스=중동’으로 인식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던 정부의 중동 순방 후속 대책은 자취를 감췄다. 당분간 ‘제2의 중동 붐’ 정책이 강한 추진동력을 되찾기는 어렵다는 관측이다.

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중동 관련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신흥 시장 개척 차원에서 중동 순방 성과 이행·확산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우선 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수습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지난달 30일 기획재정부 주재로 관계부처 회의를 열었다. 앞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다룬 피해 업종·지역 지원대책 이행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경영난에 빠진 병·의원을 돕고자 건강보험 의료 급여비를 선지급한다. 중국 관광객이 대거 한국 여행을 취소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관광업계에는 900억원 규모 특별융자를 지원한다. 중소기업에도 긴급경영안정자금 신청 절차를 간소화해 신속한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메르스 후유증 극복 관건은 향후 정상화 정책에 달렸다. 그저 잃어버린 한 달이라고 부르기엔 6월의 상처가 너무 크다. 경제 측면에서 손실을 만회할 만한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꺼낸 15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 카드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추경으로 메르스 피해 회복을 돕고 수출, 청년고용, 가뭄 등 현안에 대응한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 약화를 무릅쓰고 선택한 추경이다. 이왕 시작한 정책이니 보다 과감하고 신속한 집행으로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메르스로 인한 경제·사회적 후유증에서 벗어나 국민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각 부처에 당부했다. 총리 말이 그저 당부로만 그쳐서는 곤란하다. 메르스 후유증을 극복하고 하반기 경제 반전을 이루기 위한 선제적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