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양자컴퓨터로 퀀텀(양자) 점프를

[과학산책]양자컴퓨터로 퀀텀(양자) 점프를

최근 신문 지면이나 방송에서 양자를 뜻하는 ‘퀀텀’이란 말을 자주 접한다. 기존 대비 큰 발전이나 도약을 나타내는 퀀텀 점프라는 말은 더 이상 학계에서만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얼마 전 과학잡지와 한국물리학회가 국내 물리학자 8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위대한 물리 이론으로 양자역학이 뽑혔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 각각 2, 3위에 뽑혔으니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한 양자역학은 자연계 구성원리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해답을 주는 기초과학 수준을 넘어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반도체와 레이저 등은 모두 양자역학의 산물로 현대 고도 정보통신 사회는 양자역학에 기반을 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전자와 원자 같은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양자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간접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장치를 만들어 활용해왔다. 이제는 양자현상 그 자체를 직접 이용해 과거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양자를 활용한 기술에는 크게 양자암호기술과 양자컴퓨터기술이 있다. 1980년대에 도청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암호시스템에 대한 강한 욕구에서 출발해 양자암호기술을 개발 중이고,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람이나 물체의 순간이동이 ‘양자얽힘’을 이용해 실험실에서 구현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양자기술 정점에 있는 미래형 첨단 컴퓨터다.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에 의해 처음 제시된 양자컴퓨터는 양자중첩이나 양자얽힘과 같은 양자역학적 현상을 자료 처리나 연산에 직접 활용하는 컴퓨터다. 기존 컴퓨터는 2진법을 이용해 비트가 0이나 1 두 값 중 하나를 가지고 연산을 수행하는 반면에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중첩상태인 양자비트를 이용하고, 양자비트 끼리도 서로 얽혀 있는 상태를 이용해 한꺼번에 연산을 수행한다. 이를 양자 병렬성이라고 하는데, 이를 적절히 이용하면 기존 컴퓨터로는 불가능하거나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양자컴퓨터는 커다란 수의 소인수분해와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히 커다란 수의 소인수분해 문제 해결은 현대 암호의 근간이 되는 RSA 암호체계 붕괴를 초래한다. 또 양자컴퓨터는 복잡한 양자현상을 직접 전산모사함으로써 생물학, 생화학, 유전학, 양자화학, 신소재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것이다.

이처럼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엄청난 파급효과로 인해 기술 선진국은 양자컴퓨터를 국가 전략기술로 인식하고 범정부 차원의 계획을 수립해 개발하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국가양자정보과학비전 발표 후 국가과학재단(NSF), 고등정보계획국(IARPA),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등을 중심으로 매년 1조원 가까운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영국은 2015년부터 양자컴퓨터, 양자소자 등에 5년간 5000억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국은 2013년에만 90여개의 양자 컴퓨터 프로젝트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민간부문에서도 이미 양자컴퓨터 연구를 진행 중이거나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캐나다 D-웨이브는 세계 최초 상용 양자 시뮬레이터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최근 양자컴퓨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래부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선진국에서도 개발된 선례가 없는 최첨단 장치로서 미래 초연결사회기반 빅데이터 시대에 꼭 필요한 기술이며, 대표적인 고위험·고수익 기술이다. 그러므로 대형 융·복합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국가 연구소를 중심으로 물리학, 정보과학, 전자공학, 재료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 연구자들이 모여 체계적인 연구협업 체제를 구축해 선진국과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선진국에 비해 관련 연구자나 기반기술이 열세인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양자컴퓨터 융합연구기반조성을 위한 정부차원의 정책·재정적 지원도 필요하다. 미래산업의 근간이 될 양자컴퓨터를 우리 힘으로 개발하는 길, 융합연구에 답이 있다.

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 presto@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