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21>구경헌 한국전자파학회 회장

구경헌 회장은 “700㎒ 대역 주파수를 지상파 방송용으로 배정한 나라는 세계에 한 나라도 없다”며 “우리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황금주파수는 이동통신용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구경헌 회장은 “700㎒ 대역 주파수를 지상파 방송용으로 배정한 나라는 세계에 한 나라도 없다”며 “우리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황금주파수는 이동통신용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어떻게 해야 하나. ‘황금 주파수’로 불리는 700㎒ 대역 주파수를 놓고 이동통신업계는 통신용으로, 지상파 방송사는 초고화질(UHD)방송용으로 배정해야 한다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이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배분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가 주파수를 UHD용으로 요구하고 정치권이 지상파 방송사 주장을 대변하면서 갈등을 촉발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 5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주파수소위원회에 700㎒ 대역을 통신과 방송에 분배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지상파 4개 채널에 이 대역을 각 6㎒씩 할당하고 통신에 40㎒를 할당하는 이른바 ‘4+1’안이다. 그러나 여야 국회의원들은 700㎒ 대역을 지상파 UHD방송에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타결점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전자파학회와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한국정보과학회가 ‘700㎒ 유휴주파수 대역 활용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란 제목으로 지난 5월 27일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4개 학회는 성명서에서 “700㎒ 대역 주파수를 지상파 UHD방송용으로 배정한 국가는 세계에 한 나라도 없다”며 “주파수를 지상파 UHD방송에 할당하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런 주파수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구경헌 한국전자파학회장(현 인천대 전자공학과 교수)을 6월 26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양화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4개 학회 공동 성명서를 제안해 성사시킨 그는 정부 주파수 배분 안을 두고 표현은 완곡했지만 문제점을 조목조목 들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구 회장은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게 아니다. 학자 시각에서 세계 주파수 배분 동향과 주파수 공익적 활용, 경제적인 효율성, 기술적인 부문을 놓고 판단할 때 주파수는 이동통신용으로 배분하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공공 자산인 주파수를 방송에 공짜로 배정하려는 일은 국가 미래와 경제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언제 학회 공동 성명서 발표를 제안했나.

▲지난 4월 한국통신학회에 처음 제안했고 초안을 만들어 대한전자공학회, 한국정보과학회와 논의해 문안을 확정했다. 성명서는 4개 학회 명의로 발표했다.

-배경이 궁금하다.

▲주파수는 국가 공공 자산(資産)이다. 공공 분야는 말할 것도 업고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주파수 정책은 신중하게 수립해야 한다. 정부의 이번 700㎒ 배분 안은 문제가 많다. 정부가 주파수 배분을 잘못하면 앞으로 상당 기간 한국 전파, 통신, 정보통신기술(ICT)산업 전반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다. 이 때문에 전파와 통신, 전자, 정보 관련 4개 학회장이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구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원에서 마이크로파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인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6년 국제전화와 PCS 신규통신사업자 허가 당시 사업자 심사 반장으로 일했다. 인천대 대외교류처장을 지냈고 지난해 11월 20대 학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1년이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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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는 한국언론학회와 공동으로 토론회를 했다.

▲지난 4월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700㎒ 대역 주파수 분배정책과 방송통신의 미래’를 주제로 두 학회가 공동 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양측 견해 차이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방송 측 학자들도 통신에 주파수를 배분할 경우 방송보다 경제성이 더 크다는 점은 인정했다.

-700㎒ 대역 활용방안 연구도 하지 않았나.

▲정부에서 2013년 10월부터 ‘700㎒ 연구반’을 운영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한 주파수 관련 중립적 학계 인사와 연구기관 반원들이 1년 2개월 동안 연구했다. 지난해 12월 최종보고서를 냈다. 공익성과 공공성, 경제성, 기술 타당성을 연구했다. 김용규 한양대 교수가 연구반장을 맡았다.

(최종 보고서는 184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다. 700㎒ 대역 현황과 주요 이슈, 분야별 평가지표에 따른 통신과 방송 측 주장과 평가를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연구반 결론은 무엇인가

▲연구반에 참여한 학자 간 주파수와 방송, 통신, 공공안전에 대한 철학과 관점이 달랐고 통신과 방송 입장 차이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성은 통신이 더 크다는 점에 이견은 없었다. 경제적 가치가 통신이 7배 정도 많다. 기술적인 측면도 국제적인 흐름과 표준화를 고려할 때 이동통신용으로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나 방송 측과 의견 일치는 보지 못했다

-세계 700㎒ 대역 주파수 분배 현황은 어떤가.

▲700㎒ 대역 활용 방안을 밝힌 국가 중 지상파 UHD방송용으로 분배하겠다는 나라는 아직까지 한 나라도 없다. 115개국이 이동통신용으로 주파수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방송용으로 활용하겠다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유럽 국가들은 주파수 경매제를 실시해 국가 재정수입을 늘리고 있다. 독일은 지난 6월 19일 700㎒ 대역 중 60㎒를 경매해 1조2540억원의 재정수입을 올렸다. 우리는 지상파에 700㎒ 주파수를 공짜로 주려고 한다. 자원 낭비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같은 주요 국가도 주파수 경매를 준비하고 있다.

-정치권과 방통위는 주파수대역을 지상파 TV용으로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700㎒ 대역 주파수는 미래지향적이고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국익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정치권이 정치 논리로 황금주파수를 지상파방송용으로 배분하라는 건 타당하지 않다. 국가 미래를 위한 학자들의 객관적인 주장을 존중해 주기 바란다.

-통신에서 주파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당장 내년 3분기부터 서울 주요지역에서 데이터 사용 속도가 급감하고 스마트폰 사용자는 동영상 끊김 현상이 발생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파수 분배나 기지국 설치에 1년 이상 걸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

-국내 주파수 포화율은 어느 정도인가.

▲정부와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자료를 보면 내년 3분기에 주파수 포화율이 100%에 근접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 정도면 2011년 수준이다.

-700㎒ 주파수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하나.

▲유료방송 위주로 UHD방송을 도입하고 있다. 최근 추세는 지상파 방송 직접수신에서 다양한 채널을 보고 싶은 시간에 보는 맞춤형이 대세다. 새로운 방송환경 조성을 위해 다양한 정부 지원은 필요하지만 국익 차원에서 주파수는 이동통신용으로 분배해야 한다. 다만 한시적으로 방송용 배분도 논의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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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 이동통신업체 출범 시 주파수 배정은.

▲정부에서 그동안 주파수 관련 연구를 수행해 왔다. 제4 이동통신업체 주파수 대역으로 TDD와 와이브로 방식 2.5㎓와 PDD방식 2.6㎓를 선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규 사업자 출범하면 통신장비와 단말기 분야에 새로운 투자가 늘고 통신비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주파수 활용 원칙에 대한 생각은.

▲주파수는 ICT산업과 국가경제 발전에 필수 자원이다. 기술발전과 경제성을 고려하고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권고를 준수해 활용해야 한다. ITU는 700㎒ 대역 주파수를 통신용으로 정했다. 우리가 독자 주파수 대역을 이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도 수출할 수 없으면 기술은 고립한다. 주파수는 모든 국가에 할당한 자원이지만 기술개발과 활용방안에 따라 국가별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주파수 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산업정책은 산업논리로 답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국제적인 흐름을 직시해 우리에 가장 유리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권이 인기 영합이나 어느 한편 입장을 대변하는 편향된 주장은 옳지 않다. 국회는 행정부 고유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 안 그러면 정책혼란만 가중시킨다. 700㎒ 주파수는 포화상태에 있는 이동통신용으로 배분해야 한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원화한 주파수 업무를 한 곳으로 일원화해야 한다.

-올해 학회의 주요 사업은.

▲학회는 국내 전파와 이동통신산업과 같이 발전했다. 전파기술은 통신과 방송뿐만 아니라 에너지, 의료, 무인 전기자동차, 스마트시티 같은 분야에 폭넓게 활용한다. 학회가 주파수 효율적 관리와 미래 전파기술 개발에 선도역할을 하겠다. 올해는 맥스웰 방정식 출간 150년이 되는 해다. 회원을 1만명으로 늘리고 협력회원사와 협력기관, 해외 회원을 확대하고 SCI 등재를 통해 전자파학회를 국제 대표 학회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한국전자파학회는 전자파 분야 학술연구와 산업발전을 목적으로 1989년 설립했다. 현재 회원은 7500여명이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인화(人和)다. 세상사는 데 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등산을 자주 한다. 아내도 동행한다. 지난겨울 강원도 용대리-백담사-희운각-소공원까지 30㎞ 코스를 등산했다. 올 1월 학회 임원들과 계룡산을 등반했다. 전국 100대 명산을 두루 다닐 생각이다. 마라톤은 하프 코스를 뛴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