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실의 두 축과 일곱 적

[기고] 성실의 두 축과 일곱 적

뭐니뭐니해도 인생 최고 덕목은 ‘성실(誠實)’이다. 성실한 사람은 때론 지루해 보이고 크게 뛰어나 보이지 않지만 인생 친구로 끝까지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다. ‘내가 결국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도 결국 ‘성실한 인생’이다.

성실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깊은 생각’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연구도 교육도 할 수 없고 지도자도 될 수 없다. 깊은 생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 받아야 하는 것이다. 깊은 생각은 왕왕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다. 젊어서 숙고(熟考)의 훈련을 받아야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사람 뇌의 청신경망 구성은 태중에서 완성되고 시각신경망은 출생 후 3~4개월 동안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태어난 아이 눈을 3개월 동안 가려놓으면 보아도 보지 못한다고 한다. 생각의 뇌세포신경망 구성은 꽤 나이 들어서까지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누구라도 깊은 생각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이유다.

또 하나 축은 ‘해보는 태도’다. 젊어서 힘든 일을 해보지 않고 나이 들거나 지위가 올라가 버린 사람, 매사 말로만 하려는 사람에게는 배울 것이 없다. 선생이란 직업 위험이 여기에 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궂은 일, 힘든 일을 할 기회가 오면 사양하지 말고 하는 것이 좋다. ‘말로 안다고 나서는’ 사람보다는 ‘비슷한 것이라도 실제로 해본’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 성공한다. 깊은 생각만 하면 햄릿이고 무조건 달려들면 돈키호테가 된다.

교육 목표도 성실한 사람을 키우는 것이면 좋겠다. 교육은 첫째 ‘힘들어도 깊이 생각하고 서로 의견이 달라도 토론하고 타협하고 결론을 찾아가는’ 일련 과정을 훈련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실험정신과 창업정신을 북돋우고 도전하고 실패하게 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잘못된 방법과 과정으로 억지나 요행의 성공을 하려는 자가 아니라 성실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키워져 나와야 한다.

성실한 자의 모습을 보기 위해 불성실한 모습을 찾아보자. 성실의 일곱 적으로는 교만, 독선, 게으름, 비겁함, 거짓됨, 발끈함, 허세부림 등이 돋보인다. 우선 교만한 사람은 쓸 수가 없다. 성실한 이는 반드시 겸손하다. 독선과 고집은 자신을 돌아보아 잘못됨을 고칠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이니 이런 사람도 같이 일할 수 없다. 게으르고 비겁한 이는 항시 불평하고 책임질 줄 모르고 남이 만들어 놓은 기회에 편승하려 하니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거짓말을 하고 그릇된 길을 가기 때문에 ‘거짓됨’의 판별은 쉽지 않다. 그래서 세간의 유행이나 감언이설에 끌려 다니지 않으며 중요한 문제일수록 깊이 생각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해내는 분별력이 일찍이 길러져야 한다.

칸트는 ‘밤하늘 반짝이는 별과 마음 속 반짝이는 양심’을 삶의 기준으로 꼽았다. 양심과 분별력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나 더러운 것으로 오염되고 덮여 있으면 반짝일 수 없다. 우리 안에는 검둥개와 흰개가 있는 데, 흰개가 좋아하는 먹이를 주면 흰개가 자라고 검은개가 좋아하는 먹이를 주면 검은개가 자란다. 끝으로 발끈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것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하며 결국 수치와 조롱거리가 되니 참고 기다리고 들어주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부분적으로 알면서 전체를 본 듯 말하지 말고 타인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내가 그릇되거나 지나친 반응을 하지 못하도록 절제하는 것이 성실한 자의 모습, 혹은 매일 쌓아가야 할 훈련이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무언가 배울 것이 있는 사회가 된다.

하나가 더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기로 미리 결단하고 준행하는 것, 성실자의 약속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경종민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kyung@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