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남북 협상 타결, 대화로 위기 풀었지만 변수 많아

남북이 천신만고 끝에 대화로 위기상황을 해결했다. 무박 4일에 걸친 장시간 협상에도 ‘결렬’ 없이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남북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남북이 협상 과정에서 한발씩 양보한 것이 역으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됐다. 남북 대표가 회담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남북이 천신만고 끝에 대화로 위기상황을 해결했다. 무박 4일에 걸친 장시간 협상에도 ‘결렬’ 없이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남북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남북이 협상 과정에서 한발씩 양보한 것이 역으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됐다. 남북 대표가 회담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남북이 천신만고 끝에 대화로 위기상황을 해결했다. 무박 4일에 걸친 장시간 협상에도 ‘결렬’ 없이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남북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남북이 협상 과정에서 한발씩 양보한 것이 역으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됐다.

◇북 ‘유감 표명’, 남 ‘방송 중단’

청와대가 발표한 남북 고위당국자접촉 공동보도문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당한 것에 유감을 표명했다. 당초 한국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협상 타결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유감표명 주체는 북측이지만 지뢰 폭발을 일으킨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보도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재발방지 내용도 담기지 않았다.

이는 한국 정부가 북한 주장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협상 내내 지뢰도발은 물론이고 포격공격도 자신들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과에는 못 미쳤지만 유감 표명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평도 있다. 북한이 남북 합의문에 ‘유감’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과거 북한은 성명 등 자체 문건에서는 유감을 표명했지만 양측 합의문에 주체를 명시해 표기한 것은 유례가 없다.

북한이 우리 측에 요구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 영구 중단은 단서를 달고 중단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공동보도문에서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모든 확성기 방송을 25일 12시부터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간 북한은 확성기 방송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폭파’ 경고까지 했다. 이 부분에서는 북한이 한발 물러선 셈이다.

한국 정부는 향후 북한이 군사도발 등 돌발 행동을 취하면 언제든지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

결과적으로 남북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안에서 한발씩 물러서면서 나흘에 걸친 장시간 협상이 마무리됐다. 과거 남북 협상에서 북측의 갑작스러운 이탈로 파행이 반복됐던 것을 감안하면 남북 대화에 새 길을 열었다고 해도 무색하지 않다.

◇꺼지지 않은 불씨도

협상이 타결됐지만 앞으로 과제가 더 많다. 가장 큰 변수는 남북이 조금씩 양보한 부분이 언제든지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강조했던 재발방치책을 북한으로부터 받아내지 못했다. 북한은 1950년 이후 2000회 가까이 남한에 크고 작은 도발을 감행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최근 영화로 다시 회자된 제2차 연평대전에서 DMZ 지뢰도발과 포격공격에 이르기까지 무력행사를 멈추지 않았다. 합의문에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 또는 선언하는 내용이 담기지 않은 것은 우리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비정상적 사태 발생 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다는 문구가 곧 재발방지 약속과 제재방안을 함께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이 부분은 북한에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DMZ 지뢰도발처럼 북한이 자신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비정상적 사태 발생 시 한국이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하면 양측 갈등이 재현될 수 밖에 없다.

◇협의 채널 정례화가 관건

결국 25일 남북 합의를 바탕으로 대화 채널을 넓히고 접촉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은 공동보도문 첫 항목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이른 시일 내에 개최하고, 앞으로 여러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 남북 정상회담을 기대하긴 이르지만 대화채널을 열어놓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당국회담 형태는 유동적이다. 협상에 나섰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홍용표 통일부 장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김양건 노동당 비서 등 최고위급 ‘2+2회담’이 다시 열릴 수도 있다. 또는 양측 장관급 접촉으로 첫 테이프를 끊은 후 실무 회담 등을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회담 시기는 공동보도문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실무접촉을 9월 초 가지기로 한 만큼 그 전 또는 유사한 시기에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중요한 것은 회담 의제다.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은 양측이 분명한 목표와 대상을 놓고 만났지만 향후 회담은 의제 후보군이 폭넓다. 공동보도문에 언급되지 않은 5·24 대북제재조치 해제 문제를 비롯해 금강산 관광 재개,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경원선 복원 사업 등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의제는 이미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어느 정도 논의됐으나 의견조율에 다다르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향후 추가 협의로 이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 간 합의점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아울러 차제에 대화 채널을 정례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