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28>한국 전산학 박사 1호 문송천 KAIST 교수

문송천 KAIST교수는 “정부가 국립SW개발연구소를 설립해 독자 OS개발에 나서야 한다”며 “사이버해킹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문송천 KAIST교수는 “정부가 국립SW개발연구소를 설립해 독자 OS개발에 나서야 한다”며 “사이버해킹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문송천 KAIST교수는 남이 가지 않은 학문의 길을 간 학자다. 그는 한국 전산학박사 1호로 운용체계(OS)와 데이터베이스(DB)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다. 문 교수는 1990년 한국 최초 국산 관계형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RDBMS)을 개발했다. 세계 다섯 번째 기술 쾌거였다. 연간 250억원 수입대체 효과를 예상했다. 2년여 혼신을 다해 상용화에 나섰으나 기업 외면으로 실패했다. 그는 자식을 잃은 듯 상심이 컸고 전산학과 교수에서 경영대학 교수로 옮기는 계기가 됐다.

그는 IT 전도사로 1991년부터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프리카와 중남미 75개국에서 IT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이 때문에 ‘IT 슈바이처’로 불린다.

문 교수는 최근 빈발하는 사이버테러와 보이스 피싱, 해킹에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 가지를 제안했다. 하나는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개편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립SW개발연구소를 설립하고 창조경제를 이끌 독자 OS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를 8월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KAIST서울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구실 한쪽 벽은 그가 각종 언론매체에 기고한 칼럼 스크랩과 집필한 책들로 꽉 차 있었다. 그동안 2000회에 걸쳐 출연한 방송 출연료와 신문 칼럼 원고료는 전액 정신대 할머니와 독거노인 돕기에 기부했다. 그가 쓴 교재만 20권이고 발표 논문은 200편에 이른다.

-언제부터 IT 봉사 활동을 했나.

▲서른 아홉 살부터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전액 장학금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 은혜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해 해외 IT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미수교국에 갔다가 북한 납치기도를 알고 007 첩보영화를 방불하듯 탈출한 적도 있다. 니카라과에 갔을 때 이복형 당시 멕시코 대사(현 중남미문화원장)가 “죽으려고 왔느냐”며 호통을 친 일도 있다. 지금까지 75개국에서 IT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사전 봉사 활동 협의는 어떻게 하나.

▲한국국제협력단과 UN,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협의한다. 새마을운동을 해외에 소개하듯 그곳 국립대학 교수들에게 IT교육을 실시한다. 이제는 중독돼 방학이면 봉사 활동을 떠난다. 현재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한국 전산학 박사 1호인데.

▲고교시절 전교 1등으로 문과 반이었다. 고3 들어 진로를 전자계산학과로 바꿨다. 주위에서 ‘괴상한 놈이 나왔다’고 수군댔다. 남이 안 하는 새로운 분야 일을 하고 싶었다. 당시 전자계산학과는 숭실대가 유일했다. 미국보다 5년 늦다. 대학입시 원서를 쓰는데 담임이 원서를 찢기도 했다. 일류 대학 진학을 기대했던 내가 후기대학의 생소한 학과에 가겠다니 담임으로서는 배신감이 컸던 모양이다. 숭실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계속 공부하고자 했으나 해당 학과가 없었다. 수학을 독학해 KAIST 수학물리학과에 3등으로 입학했다. 이어 1984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전산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85년 KAIST 전산학과 교수로 취임했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를 거쳤다. 2014년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로 선출됐다. 지금은 KAIST 경영대학원에서 사이버보안과 해킹을 강의한다. 그가 배출한 박사만 30명으로 절반이 교수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빌 게이츠 미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을 만난 첫 국내 학자라는데.

▲1994년 내한한 빌 게이츠 요청으로 12월 6일 신라호텔에서 조찬을 하면서 OS와 DB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빌 게이츠는 조찬 후 청와대로 김영삼 대통령을 예방했다. 그 후 두 번 더 만났다. 그의 소탈함에 놀랐다. 미국에서는 직접 운전하고 수행원도 없이 나타났다.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는데.

▲1995년 MS에서 같이 일하자고 했다. 국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거절했다.

-그동안 만난 세계적인 IT 인사들의 특징은.

▲빌 게이츠를 비롯해 세계 전산학박사 1호이자 세계 DB 개척자인 짐 그레이, 토머스 시블 회장 같은 세계적인 IT 인사를 많이 만났다. 스티브 잡스는 만나지 못했다. 그들의 특징은 독선적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나를 보는 느낌이었다.

-개발한 RDBMS는 왜 상용화에 실패했나.

▲국내 대기업에 투자를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말로만 기술입국을 외쳤다. 미국 오라클 같은 기업으로 키우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좌절감으로 상심이 컸다.

-요즘 사이버테러와 보이스 피싱, 해킹사고가 빈발한다. 이유가 뭔가.

▲우리 사회가 획일적인 하드웨어 사고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IT산업 80%를 소프트웨어가 차지한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라는 한국의 세계 SW 점유율은 1.8%다.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해킹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체계를 바꾸자고 주장하던데.

▲해커들은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재구성하므로 이를 원천 차단하려면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해킹은 데이터 싸움이다. 당장 바꾸기 어렵다면 주민번호를 여권번호나 운전면허번호, 전화번호처럼 변경할 수 있게 하면 된다. 당장 해킹건수가 현재보다 10분의 1로 뚝 줄어들 것이다. 해커들은 DB 전문가다. 일이 복잡하면 포기한다. 번호체계를 안 바꾸고 암호화해 봐야 해커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오히려 암호화에 따르는 비용만 수백조원 낭비한다.

-아이핀이나 마이핀 같은 대체 인증 수단은 실효성이 어느 정도인가.

▲개인정보대책이 10개쯤 되는데 실효성이 없다. 현 주민등록번호 유지를 전제로 한 대책은 해커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현재대로라면 한국은 해커들의 먹잇감이다.

-한국인 주민등록번호가 중국에서 암거래된다는 게 사실인가.

▲공공연한 비밀이다. 붙잡힌 해커들이 다 밝힌 내용이다. 지금 클린서비스에 들어가 자신의 개인정보 도용 여부를 조회해 보면 최소 1인당 100건 이상은 될 것이다. 개인정보가 새나가면 다른 부분도 뚫린다. 사이버전에도 절대 불리하다.

-주민등록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은.

▲1000억원 선에서 가능하다. 시일은 3개월이면 된다. 2014년 1월 KB국민카드와 롯데카드, NH농협카드 3사에서 1억400만건 고객정보 유출 사고가 났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1월 27일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해 재발방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그 후 대책은 흐지부지됐다. 청와대나 해당 부처 누구도 이 업무를 챙기지 않았다. 사이버테러나 해킹사건은 여전하다.

-정부가 주민등록번호를 고집한다면 대안은 뭔가.

▲주민등록번호는 정부만 독점 사용하고 관리해야 한다. 기업은 별도 고객식별번호를 사용하게 하면 된다. 기존 주민등록번호에서 생년월일은 빼야 한다. 해커들이 정부 공권력에는 절대 도전하지 않는다. 그건 파멸이란 걸 그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해킹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정부가 연간 5000억원 정도라고 하는데 정작 심각한 문제는 원전이나 수도, 가스 같은 국가 인프라가 해커들에게 당한다는 점이다. 원전 사태를 보지 않았나. 국가 기간 시스템이 멈출 수 있다.

-액티브X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은 하드웨어 사고방식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처음부터 다양한 결제와 인증 방식을 마련했어야 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정부의 SW육성책은 잘하고 있나.

▲SW산업 특성은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뿌리 내릴 수 없다. 노키아 사례에서 보듯 생태계가 없는 산업은 사상누각이다. OS가 없으면 생태계를 형성할 수 없다. 지금 SW강자인 구글과 애플은 자체 생태계를 갖고 있다. SW 생태 주기는 6개월이다. 한국 OS정책은 개방형인데 우리도 중국처럼 독자 OS를 개발해야 한다. 중국은 샤오미가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국방부가 10년간 IT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그래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만들었다. 한국은 3년도 못 간다. 정권이 바뀌거나 장관만 교체해도 기존 정책은 흐지부지된다. 나는 세계 7위의 SW업체가 한국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가 빨리 SW업체로 변신해 주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국립SW개발연구소를 설립해 SW 중심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앞으로 일자리는 IT 분야에서 만들어야 한다. 이 정부에는 DB 전문가가 없다. DB 전문가가 정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해야 한다. 해킹 근절책이 있는데 정부가 왜 추진하지 않는지 정말 답답하다.

-좌우명과 취미는.

▲고3 전에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었고 지금은 ‘폭넓게 보자’다. 애플의 사훈인 ‘다르게 생각하자(Think Different)’를 그렇게 받아들인다. 취미는 도전하는 극한 스포츠인 테니스와 축구, 마라톤을 즐긴다. 테니스는 학생들과 시합해도 지지 않는다. 축구도 좋아해 대학시절 늘 공을 메고 다녔다. 마라톤은 연 2회 풀코스를 뛴다. 지금까지 33번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는 마라톤에서 ‘1m 10원 운동’을 벌여 매년 풀코스를 달린 후 그 돈을 백혈병 어린이와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전액 기탁했다. 이를 입증하듯 그의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구릿빛을 띠고 있었다.

이현덕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