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동의 사이버세상]<9> 사이버 만리장성

[손영동의 사이버세상]<9> 사이버 만리장성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으로 수백만 사이트를 실시간 검열해오던 중국이 사이버 만리장성을 더 높고 단단하게 쌓아가고 있다. 국가 안전과 소비자 권익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공안까지 나서 사이버통제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간 중국은 검열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기업 서버를 폐쇄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해왔다. 검열 당국은 올해 들어 300여개 사이트를 폐쇄했고 소셜네트워크 규정을 강화해 115만개 계정을 삭제했다. 지금까지 만리방화벽을 이용해 암암리에 사이버공간을 감시해왔지만 이제는 사이버경찰이 대형 인터넷기업에 상주하며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공안 당국은 지난 6월 ‘사이버경찰’ 사이트를 개설해 공개적으로 사이버순찰에 나섰다. 사이버경찰은 인터넷을 24시간 감시해 온라인 사기 예방, 음란물·악성루머 색출 등 당국이 불법으로 규정한 행위를 막는 역할을 수행한다. 중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사이버단속에 투입되는 인원이 사이버경찰과 심사원·여론조사원을 합쳐 총 200만명에 달한다.

중국은 사이버보안법을 제정해 통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 7월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는 사이버상 공격과 범죄, 유해정보 확산 위협에서 사이버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사이버보안법 초안을 마련했다. 초안은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사이버위협 발생 시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방안을 명시하고 자국 모든 분야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정부·기관·기업·개인이 이행해야 할 역할과 의무를 담고 있다.

외국 인터넷기업 규제도 포함됐다. 그 중에서 정보기술 공급업체가 준수해야 할 보안표준 제정이 논란거리다. 글로벌 기업은 이 표준이 외국 제조사 시장진입을 막거나 발목 잡기 방편이라 보고 있다. 과도한 사이버통제 조치에다 국제표준에 부합하지도 않은 정책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5월 미국이 중국 장교 5명을 해킹 혐의로 기소하자 중국은 보안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기업 제품 중국 내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나섰다. 숨겨둔 악성코드에 의한 염탐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목표는 미국 기업이다. 보안규정이 중국시장 무역장벽 역할도 하는 셈이다.

자국민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처리하는 기업은 해당 서버를 중국 내에 둬야 한다. 의료·보건과 같은 민감정보 해외 저장 및 반출을 막고 국가기밀이 담긴 데이터 해외 전송도 금지한다. 해외에 저장되는 데이터는 당국에서 광범위한 보안적합성 검증을 받아야 한다. 사이버통제와 관련 중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는 러시아는 이를 의무화하는 새로운 사생활보호법을 도입해 지난 1일 시행에 들어갔다. 애플은 이미 중국 사용자 데이터를 암호화해 현지 국영업체 플랫폼에 저장하고 있다.

중국은 해외 기업 자국 진출을 적극 환영하면서도 자국에서 사업하기 위해서는 사이버안보와 관련해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미국 인터넷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려면 보안검사와 정부 당국이 요청하는 민감한 글의 검열과 요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빙’ 검색서비스는 중국 검열 규제에 따르지만 구글은 이에 반대해 중국 내 사업을 접었다. 2006년 4월 중국에 상륙한 구글은 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파룬궁(法輪功)’ 같은 반정부적 내용이 포함된 검색결과를 차단하는 조치를 암묵적으로 수용해왔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음란물을 빌미로 구글 일부 서비스를 중지시켰고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 접속을 수시로 차단했다. 2010년 1월 구글 지메일을 중국 당국이 해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사업철수를 결정했다.

당시 구글과 손잡고 중국 정부에 대응한 야후도 지난 3월 중국 시장에서 발을 뺐다. 야후 중국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당국 검열에다 현지 기업과 경쟁 심화로 부진을 겪어왔다. 야후는 중국 반체제 인사와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야후가 이들의 온라인 활동 기록을 중국 수사당국에 넘겨 10년 징역형을 선고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구글과 야후를 비롯한 글로벌 인터넷기업이 줄줄이 물러나면서 중국 인터넷 시장은 현지 기업 독무대가 됐다. 토종 기업은 당국의 강력한 검열과 규제 덕분에 거대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세계 시장을 넘보고 있다. 정보기반기술 국산화에 앞장서온 중국은 자국 정보흐름을 통제함으로써 사회 안정을 꾀하고 있다.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언제든지 인터넷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는 제국이 중국이다.

손영동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viking@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