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주년] 김기사-레이븐을 만나다

박종환 록앤올 대표
 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박종환 록앤올 대표 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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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호 넷마블에스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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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호 넷마블에스티 대표 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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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사’와 ‘레이븐’. 대략 4명 중 1명은 김기사를 깔았고, 10명 중 1명은 레이븐을 플레이해봤다.

김기사와 레이븐은 각각 창업 5년, 3년 된 회사가 만든 소프트웨어(SW) 상품이다. 업력은 짧지만 록앤올(김기사)과 넷마블에스티(레이븐)는 업계에서 신화 같은 존재가 됐다.

록앤올은 지난 상반기 다음카카오에 625억원에 매각되며 성공적인 기업 인수합병(M&A)·투자금회수 전례를 남겼고, 레이븐은 100일 만에 누적 매출 1000억원을 기록하며 모바일게임 역사를 새로 썼다.

박종환 록앤올 대표와 유석호 넷마블에스티 대표가 만났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창업했지만 둘은 공통분모가 많은 기업이라 할 말이 적지 않았다. 김기사와 레이븐은 어떤 꿈을 달성했고 또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사회=김기사와 레이븐은 올해 상반기 IT 업계에서 가장 많은 이슈를 몰고 다닌 제품입니다. 서로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요.

◇유석호 넷마블에스티 대표=김기사를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웃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레이븐과 김기사는 닮은 점이 참 많습니다.

우선 내비게이션, 하드코어모바일 RPG라는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았고요. 넷마블에스티가 넷마블게임즈를 만나 날개를 단 것처럼 록앤올도 다음카카오를 만나 글로벌 진출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는 점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네요.

◇박종환 록앤올 대표=평소 게임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레이븐을 모를 수 없죠. 닮은 점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 저희가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넷마블에스티는 이미 모기업과 한번 시너지를 낸 경험이 있고요. 저희는 이제 시작입니다.

사실 레이븐이 다음카카오를 통하지 않고 성공한 게임이라는 점은 조금 속상하지만요.(웃음). 새로운 도전으로 성공한 기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넷마블게임즈가 직접 만든 게임인 줄 알았는데 스타트업이 개발했더군요. (자본력 있는) 대형기업이 스타트업 성공을 견인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김기사를 처음 서비스할 때 매출이 안 나오는 구조다 보니 게임이 참 부러웠어요. 거의 앱스토어 매출 상위권을 게임이 점령하더라고요.

◇사회=록앤올과 넷마블에스티 모두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습니다. 창업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 가장 즐거웠던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박종환=록앤올을 시작한 지가 5년 반 정도 됐네요. 초창기에는 이용자가 많이 없어 교통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다른 업체 솔루션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요. 아무래도 스타트업이다 보니 가격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였죠.

결국 대안이 없어 쓰기는 했는데 매출은 안 느는데 서비스를 할수록 비용이 늘어나는 구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통신사 내비게이션 서비스와 경쟁도 큰 난관이었죠. 일단 통신사 내비게이션 서비스는 단말기에 기본 탑재돼 나오잖아요.

게다가 데이터요금도 요금제라 묶어서 무료로 제공하다시피 했으니까요. 벤처라고 꼭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불공정하게 느껴졌죠.

◇유석호=아무래도 자금이었죠. 나름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퍼블리셔들이 관심을 안 가지는 상황이 계속 되니까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버티기 어려웠어요.

투자를 받으려고 부모님 집까지 담보로 잡고 월급도 점점 떨어지게 된 상황에서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을 만났습니다.

5분 만에 투자 결정과 퍼블리싱이 이뤄졌는데 ‘이게 이렇게 될 수 있구나’라는 기분이 들었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기뻤던 순간은 아무래도 레이븐이 이용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받았을 때겠죠.

◇박종환=사업을 시작했을 때가 국내에 막 아이폰이 들어오던 시기였는데요. 통신사 내비서비스는 피처폰 내비게이션을 스마트폰용으로 포팅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진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했죠. 비유를 하자면 “저쪽이 음식 먹고 후식 개념으로 커피(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준다면 우리는 커피 전문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좀 더 스마트폰 시대에 맞는, 조금 더 고급스러운 그런 상품을 만들려고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이용자로부터 우리가 의도한 부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그 쾌감은 잊기 힘듭니다.

◇사회=현재 한국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보면 글로벌 최상위는 아니더라도 상위권 정도에 위치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각자 분야에서 판단하시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어느 지점까지 와 있을까요.

◇유석호=게임, 특히 모바일게임은 최상위권을 노리려는 타이밍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대거 인력을 투입해 (최상위권이라는) 목표에 다가가려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적은 인력이지만 개개인 능력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죠.

결국 글로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국처럼 인해 전술이 아닌 고급 개발자를 많이 길러내야 합니다.

하나 더 꼽으라면 마인드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마인드’ 말이죠. 어느 나라에 게임을 출시하든 ‘이 분야에서만큼은 내가 최고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마음가짐이라면 우리나라 게임 산업은 1등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박종환=절대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괜찮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이 열악하죠.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결국 기업 인수합병(M&A)으로 귀결이 됩니다. 자체적인 힘으로 기업공개(IPO)까지 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스타트업이 나오고 대기업은 그 경쟁력을 인정해 높은 값을 주고 회사를 사죠. 스타트업은 그 돈을 가지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재투자합니다.

록앤올이 다음카카오에 625억원에 M&A됐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 규모 기업 인수합병(M&A)도 정말 가물에 콩 나듯 하죠. 대기업 가치 투자가 적은 점이 아쉽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에서는 훨씬 더 큰 규모의 M&A가 일어나는데 그렇다면 좋은 인재들은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한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 성공한 서비스가 세계로 나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 결국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자꾸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김기사’와 ‘레이븐’ 모두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소프트웨어 상품이 세계시장에서도 성공하려면 어떤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박종환=한국 시장만 보고 소프트웨어 상품을 만드는 기업은 없습니다. 적어도 한·중·일 세 국가는 보고 만들죠. 그런데 직접 해보면 진짜 시장이 달라요.

일단 해외는 시장 규모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사업이 ‘얕은 바다였구나’라고 느껴요. 바다도 깊고 물고기도 크죠.

록앤올이 지금 일본에서 현지 협력사와 같이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제가 느끼기엔 한국 정서와 완전히 다른 시장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유턴에 거부감이 없잖아요. 그런데 일본은 유턴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래서 길을 알려줄 때 유턴을 하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해요.

감성 품질도 다르게 세팅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만든 서비스라면요. 우리가 아무리 일본 느낌이 나게 만든다고 해도 현지 사람들은 “조금 이상한데,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 같지 않아”라고 느끼더라고요.

미국 서비스는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미국 느낌이 나도 받아들여요. 미국, 실리콘밸리라는 이미지가 거부감이 없는 것이죠. 한국은 다릅니다. 이질적인 느낌이 나면 바로 그게 장벽이 돼요.

◇유석호=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닌데요. 저희는 오히려 글로벌 감성을 가진 게임을 제작하려고 노력합니다.

레이븐도 사실 한국시장 이용자를 타깃으로 만든 게임입니다. 지금 글로벌 진출을 하려고 현지화를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다음에 게임을 만든다면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보편적인 재미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 경험을 비춰보면 일본에서 만든 게임이든 미국에서 만든 게임이든 출신을 따지지 않고 재미있게 했잖아요. 거기에 게임 플레이에 본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빌드로 만들어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디서 게임을 하든지 이질감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지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종환=이런 관점은 아무래도 생활밀착형 서비스와 콘텐츠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게임은 문화 콘텐츠고 내비게이션은 습관에 가까우니까요.

◇사회=두 분 다 스타트업을 출발하면서 아무래도 인력 고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유석호=지금은 괜찮은데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월급도 많이 줄 수 없고 미래를 담보하기도 힘들었죠.

처음에 같이했던 멤버 중 반 정도가 남았네요. 지금 130명 정도 직원이 있는데요. 6개월 사이에 2.5배가 늘었습니다.

사람을 뽑는 데 특별한 기준은 없습니다. 다만 넷마블에스티가 가진 철학과 부합하는지를 먼저 따집니다. ‘게임을 즐거워해야 한다’ ‘이 게임으로 이용자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 이런 것들이요.

경영자로서는 직원들을 리더로 키우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게임 제작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박종환=7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40명 정도 됩니다. 지금이야 좀 나은데 처음에는 록앤올이라는 회사를 잘 모르니 우수한 인재들이 지원을 잘 안하는 그런 분위기였어요.

그래도 나름 김기사라는 대표 상품이 있다 보니 수월하게 채용을 했고 연구실 후배를 많이 데려와서 개인적으로 리크루팅을 했습니다.

벤처 초기에는 월급을 많이 줄 수도 없으니 초기에는 주식을 증자하면서 같이 자리를 잡아갔죠.

◇사회=우리나라에서 창업하기가 예전보다 쉬워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선배 창업인으로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유석호=창업은 쉬워도 성공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어렵습니다. 그래도 창업을 한다고 하면 주위 도움을 많이 받으라고 하고 싶네요. 좋은 아이템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면 누구나 이쪽에 뛰어들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만의 성공방정식을 만들어야 하는 아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죠. 저는 넷마블게임즈와 손을 잡으며 그런 성공 노하우를 많이 체화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번 성공해 본 사람의 경험은 뒤따라 가는 입장에서 굉장히 유용합니다.

창업을 같이 한 사람들과 동료애를 나누고 성공한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얻는다면 길을 조금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박종환=예전보다 창업하기 좋은 환경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죠. 국내에서도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투자환경은 확실히 좋아지는데 3~5년 정도에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회수하게 해주려면 그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겁니다.

남의 돈을 가지고 창업을 하는 것은 자칫 책임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부분이죠.

철저히 준비된 다음 도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저는 서른 아홉 살에 창업했습니다. 지금 창업자 대부분이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이들이죠. 우리나라는 한번 실패했을 때 재기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실패를 경험하면 좋은 기회가 와도 섣불리 재창업에 나서지 못하게 되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덤비는 것은 위험합니다. 충분히 경험을 쌓고 도전해도 그렇게 늦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즐기는 마음가짐을 가지세요. 어려움을 즐길 줄 아는 것도 벤처 창업가의 덕목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성공이 다가옵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