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2016년 국가 R&D 예산, 신규사업 ‘제로’

내년도 반도체·디스플레이·LED 분야 연구개발(R&D) 신규사업 정부 예산이 결국 ‘0원’으로 책정됐다. 미래부가 정보통신진흥기금에서 더 이상 이 분야 지원 예산을 배정하지 않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례적으로 국회 산업위가 미래위에 내년 예산안 재검토까지 요청했지만 삭감한 기존 사업 예산을 일부 회복하는 데 그쳤다.

2일 산업부와 산학연 다수 관계자에 따르면 내년도 국가 반도체·디스플레이·LED 분야 연구개발 사업인 ‘전자정보디바이스 산업원천기술 개발사업’ 예산안에서 신규사업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신규 사업 예산에 200억원가량 책정했으나 내년부터 신규 사업을 없애고 기존 진행 중인 사업만 일정대로 종료해 전체 사업을 마무리하겠다는 게 미래부 결정이다.

전자정보디바이스사업은 국가 연구개발 사업 일환으로 미래부의 정보통신진흥기금 중 일부를 배정받았다.

국가 정보통신기술(ICT) 전략을 총괄하는 미래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LED 산업이 대기업 중심이고 기술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만큼 더 이상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통신진흥기금을 관리하는 미래부가 산업부에 예산을 배정하는 데 내년부터 미래부 자체 신규 사업에 더 투자하겠다는 의지도 주효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올해 초부터 내년도 연구개발 예산이 전무할 것이라는 위기가 감돌았다. 매년 신규 사업을 배정하지 않고 기존사업만 운영하면 향후 2~3년 내에 모든 사업이 종료하게 돼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사업은 남지 않게 된다.

미래부가 실제로 내년도 예산안에 이 같은 계획을 반영하자 국회에서 논란이 됐다.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내년 정보통신진흥기금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 예산안을 재검토해줄 것을 공식 제안하는 이례적 상황까지 발생했다.

미래위는 산업위 의견을 검토해 기존사업 예산에서 삭감한 86억원을 회복키로 합의했다. 산업부는 당초 기존사업과 신규 사업 예산을 합쳐 추가로 320억원 증액을 요구했지만 이 중 86억원만 받아들여진 것이다. 결국 올해 950억원에서 내년 54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삭감된 예산에서 86억원을 증액해 626억원으로 확정했다.

문제는 여전히 ‘제로’인 신규사업 예산이다. 더 이상 정보통신진흥기금에서 연구개발 예산을 책정할 수 없다는 미래부 의견이 반영됐다. 예결위 심사가 최종 남았지만 현실적으로 번복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당장 내년도 신규사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산업부는 비상이 걸렸다. 반도체·디스플레이·LED 산업에 걸쳐 연구개발 예산이 사라지면 대학에서 진행할 프로젝트가 큰 폭을 줄어든다. 반도체 분야는 중소·중견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까지 대학 인력부족을 호소하는 상황이어서 가뜩이나 부족한 신규인력 양성이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한 대학 교수는 “정부 연구개발 사업은 대기업이 수혜를 받는 게 아니라 산업 뿌리인 대학에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연구 인프라를 풍부하게 만드는 효과가 크다”며 “한 해라도 신규사업이 끊어지면 다음해 예산을 배정받기 힘든데다 당장 수백억원 규모를 산업부 자체 예산에서 끌어오기도 힘든 상황이라 더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산업부 고민도 깊어졌다. 내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정보통신진흥기금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예산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산업부 자체 예산에서 2017년 사업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하지만 산업부 전체에 걸쳐 수많은 연구개발 과제 중 일부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미래부가 국가 ICT 전략을 총괄하는데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인력양성과 국가 기술개발을 대기업에 의존해도 된다고 판단한 것인지 궁금하다”며 “기업은 잘 나가는 메모리반도체도 위기라고 걱정이 큰데 정부는 국가 기간산업인 반도체를 일부 대기업에 맡겨두고 방치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