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동의 사이버세상]<22>대(對)테러 공조 한계 드러낸 디지털강국

[손영동의 사이버세상]<22>대(對)테러 공조 한계 드러낸 디지털강국

미국 정보당국은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30개국에 통신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테러 용의자를 가려내기 위한 감시 프로그램 강도를 높인다. 사이버공간에서 추적을 강화해 소통채널을 무너뜨리면 조직 전체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권 국가들은 정보협력체인 ‘파이브 아이스’를 결성해 수집한 정보를 공유했다. 영국은 해외정보국(MI6)·국내정보국(MI5) 등 대(對)테러 정보부문에 투입할 요원을 15%(1900명) 늘리기로 했다. 프랑스는 지난 5월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면 법원 영장 없이 이메일과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는 보안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2만여명 ‘비행금지자’ 명단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시사잡지 ‘샤를리’ 테러범도 이 명단에 들어 있었지만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테러를 막지 못했다. 프랑스 수사당국은 지난달 13일 일어난 파리 테러를 계기로 미국과 테러 관련 정보를 공유키로 하고, 테러 용의자와 지원세력이 주고받은 메신저 내용을 정밀 분석하고 있다.

돈줄을 차단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IS는 석유 밀매 등으로 점령지 안에서 충분한 수익을 창출하는 부자 테러집단이다. 미국은 이들 자금원과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금융거래를 파고든다. 또 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은 미국 의회에 “사이버감시를 위해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위험하다고 판단된 웹사이트 운영을 즉각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다.

인터넷만 뒤져도 어지간한 정보는 다 찾을 수 있는 세상이다.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면 빅데이터를 분석해 알아내지 못할 정보가 별로 없다. 집단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지능적인 악성코드를 이용한 사이버테러를 상정할 수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기술적 테러는 물론이고 비윤리적 인신공격과 음해가 악의적 의도로 전개된다면 이를 테러로 규정할 수 있다.

테러를 예방하려면 용의자의 준비과정과 모의에 대한 은밀한 소통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테러 모의만으로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 몇 년 전 정보당국은 무장단체 탈레반 연계 혐의자가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첩보를 확인했지만 휴대전화 감청이나 위치추적이 불가능해 그가 출국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국가정보원은 IS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이 10명에 이르고 국내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 4명이 IS를 추종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테러가 일어나야 처벌할 수 있는 게 대한민국이다. 테러단체를 추종한다는 이유로는 체포·압수 영장을 받을 수 없어 테러 위험성을 뻔히 보면서 손쓸 수가 없다. 이것이 구멍 뚫린 대한민국 대테러 현주소다.

우리는 세계 각국이 사이버범죄·테러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만든 ‘부다페스트조약’에 가입 신청할 자격도 없다. 국제사회 일원이 되려면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는데 감청도 못하는 나라를 무임승차시킬 리 만무하다. 우리의 통신비밀보호법엔 감청설비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통신사 유선 감청은 가능하지만 무선 감청설비 자체가 없으니 영장이 소용없다. 반면에 서방은 법적으로 감청설비를 갖춰야 하고, 호주는 이를 어기면 면허를 취소해 사업을 접어야 한다.

우리는 대테러 제반사항을 규정할 테러 관련법이 논란만 계속된 채 14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정원 권한 남용을 우려하지만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수 있고 무엇보다 국민이 불법을 허용치 않는다. 세상은 평평해지고 있다. 과거처럼 특정소수가 정보를 독점하고 다수를 통제하는 체제가 아니라 대중 역시 자신을 감시하는 권력자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이른바 ‘시놉티콘(synopticon)’으로 서로가 서로를 동시에 견제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디지털화에 따른 작용과 반작용을 숱하게 경험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시도 때도 없는 사이버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테러 예방을 위한 국제사회와 공조가 시급한데 우리는 휴대전화 감청도, 계좌추적도 할 수 없어 고립을 자초할지 걱정될 지경이다. 국가의 앞날을 선도해야 할 사람들의 아날로그적 사고가 사이버테러 대응과 같은 적잖은 부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야(與野)가 똘똘 뭉쳐 대테러 선제적 조치를 다그쳐도 모자랄 판이다.

손영동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viking@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