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동의 사이버세상]<25>정보 과유불급(過猶不及)

[손영동의 사이버세상]<25>정보 과유불급(過猶不及)

얼마 전 스티브 잡스가 임종 직전에 남겼다는 유언이 가짜로 밝혀졌다. 요약하면 “부(富)는 부질없고 가져갈 수 있는 건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진위여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순식간에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찬사가 이어졌다.

우리나라 사람은 ‘속도’에 유별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디지털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은 소위 ‘빨리빨리’ 문화에 기인한다. 웹사이트에 들어가 단지 몇초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 이내 다른 사이트로 간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표준어나 맞춤법을 무시하고 틀에 구애받지 않는 각종 약어를 섞어 최대한 간단하게 의사표현을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너무 즉흥적이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가스 불에 냄비가 달아오르듯 하는 냄비근성으로 폄하한다. 하지만 우리의 호기심과 민첩성이 디지털화를 촉발시킨 원동력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디지털 세상에선 속도가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신기술이나 신제품이 나오면 먼저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젊은이가 대한민국을 최첨단 디지털제품 가늠터(테스트베드)로 만들어놓았다.

변화속도가 너무 빠르고 정보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무엇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우리는 인터넷에 떠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방대한 정보를 선택하기조차 어려운 정보과부하에 직면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라며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면서 지식 복음을 전파했다. 이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져야만 사회생활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정보결핍 환경에서 더 없이 적절한 진리였다.

현대 정보과잉 환경에 들어서면서 필요 없는 쓰레기 정보나 허위정보가 마치 대기오염 주범인 스모그처럼 사이버공간을 어지럽힌다. ‘데이터 스모그(data smog)’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은 기술발달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업그레이드 강박증’에 시달린다. 잠시라도 연결되지 않으면 뭔가에 뒤쳐질 수 있다는 불안의식이 팽배하다.

인간 인지능력을 벗어나도 과부하가 발생한다. 인간이 한번에 처리하는 정보량은 한계가 있다. 때문에 입력되는 정보가 이를 처리하는 인간 인지 용량을 초과할 때 정보과부하가 발생한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인지심리학자 조지 밀러가 제시한 마법의 수(magic number) 7±2가 인간 정보처리능력 한계다.

정보가 너무 적어도 적절한 판단이 어렵지만,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도 적절한 판단에 방해가 된다. 자칫 무모한 정보더미에 깔려버릴지도 모른다. 유용한 지식을 취사선택해 전략적 가치로 변환시키는 것이 디지털시대에 중요한 능력 척도다.

정보결핍 환경에서는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가 충분치 않아 정보를 가진 사람이 기득권을 행사했다. 정보가 부족한 환경에서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사고력과 제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디지털사회가 가져온 정보과잉 환경에서는 올바른 판단을 방해할 만큼 정보가 많아 정보선별을 위한 사고력과 제도가 필요하다.

인터넷이 정보 과부하(정적)를 불러왔다면 소셜네트워크는 정보를 가진 사람의 과부하(동적)를 불러온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열거할 수 없다. 깊이를 잃어버린 파편화된 정보가 사람들을 산만하게 만든다. 이를 중재해야 할 전통미디어 권위가 축소되고 개개인의 정보생산력과 사회적 영향력은 놀랄 만큼 커졌다. 그럼에도 책임 있는 표현은 소수에 국한된다.

우리의 사이버공간은 막무가내식 악플과 루머에 뒤덮여 있다. 대형 사고가 터지면 어김없이 괴담이 나타난다. 거짓정보에 혀를 차면서도 투명인간 행세를 하는 자기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디지털화는 사회전반에 걸쳐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나 미증유(未曾有) 갈등을 양산하고 또 정화해나가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다.

손영동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초빙교수 viking@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