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프레스티지 `순간이동`

2006년 개봉작 ‘프레스티지(The Prestige)’는 주인공 로버트 앤지어(휴 잭맨)가 순간이동 마술을 선보이기 위해 윤리까지 거스른다는 내용이다. 단순한 마술 영화는 아니다.

영화에는 실존 인물인 과학자 테슬라가 등장한다. 테슬라는 교류 전기를 개발했다. 순간이동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하기도 했다. 로버트는 앙숙인 알프레드 보든이 개발한 순간이동 마술을 꺾기 위해 테슬라를 찾아간다.

테슬라의 저택에는 똑같은 모자가 여럿 나뒹굴고 있었다. 테슬라는 완전한 순간이동 대신 복제 장치를 개발했다. 완전한 순간이동을 위해서는 A 위치에 있는 사람이 B 위치로 이동하고 A 위치에는 아무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복제 장치이기 때문에 A와 B에 모두 똑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이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순간이동과 비슷하다. 마이클 핸런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에서 저자는 순간이동을 ‘한 장소에 있는 물체나 사물을 분해한 후 다른 곳에서 그 복제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양자역학 순간이동 실험은 이미 성공했다. 덴마크 과학자는 원래 위치에 있는 광자 A의 정보를 이동하고 싶은 위치에 있는 C에 복제해 빛의 순간이동을 성공시켰다. A를 옮긴 것이 아니라 복제한 C를 만든 셈이다. 2014년 네덜란드에서도 그 방식으로 데이터를 3m나 이동시키기도 했다.

[사이언스 인 미디어]프레스티지 `순간이동`

문제는 유기체를 대상으로 하기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점이다. 복제된 입자를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 입자의 배열이 조금만 달라져도 아예 다른 물체가 된다. 불순물이 섞여도 문제다. 1986년에 개봉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플라이’에선 주인공이 순간이동 장치로 인해 파리 괴물이 되고 만다. 순간이동 장치 안에 날아든 파리의 입자와 주인공의 입자가 섞인 탓이다.

이 문제가 풀리더라도 남아 있는 원래의 ‘나’의 처리 문제는 커다란 해결 과제다. 순간이동이 일종의 복제이기 때문에 두 가지 장소에 동일 인물이 존재하게 된다. 유기체를 입자로 분해하는 과정은 개발되지 않았다. 본래의 나를 깔끔하게 없애버릴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윤리적으론 영 꺼림칙한 문제다.

프레스티지에서 로버트는 또 다른 자신을 없애는 방식으로 순간이동 마술을 선보인다. 하지만 이는 윤리적인 문제를 낳는다. 두 명의 로버트는 사회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는 동일인간이다. 하지만 수중 마술 장치에서 죽어가는 순간 그 둘은 확연히 달라진다. 사람은 동시에 죽거나 살아있을 수 없다. 둘은 지위도 같으며 DNA 정보와 기억까지도 동일하다.

다행히 현실에서 순간이동 장치는 발명되지 않았다. 우리는 당장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복제기술과 인간 윤리가 계속 거론되고 있다. 프레스티지는 한 번쯤은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영화다.

안호천 통신방송 전문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