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제품 안전 리콜, 명령만으로는 안된다

[ET단상]제품 안전 리콜, 명령만으로는 안된다

새해 벽두부터 터진 북한 핵실험, 중국발 쇼크, 국제유가 급락 등 악재가 겹치면서 올해도 세계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더욱이 지난 1월 국내 수출이 18.5%나 급감하면서 수출 한국에 비상등이 켜졌다. 저금리, 저물가, 저성장으로 대변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란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품 안전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노력이 약화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올 한 해를 위해 제품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품안전정책도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2015년은 우리나라 제품안전 정책에서 매우 뜻 깊은 한 해였다.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이 본격 시행돼 13세 이하 어린이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체계를 갖춘 제품 안전관리가 가능해졌다. 제품안전기본법 개정을 통해 수입제품에 대한 통관 전 안전성 조사의 법적 근거가 마련돼 불법·불량 수입 제품이 국내 유통 전 단계인 통관 과정에서부터 걸러질 수 있게 됐다. 전면 개정된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을 통해 인증 당시와 달리 주요 부품을 임의로 변경한 사업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지는 등 국내 제품안전정책이 외형으로 선진국 수준 면모를 갖추는 한 해였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지난해 정부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4800여개 제품의 안전성 조사를 실시, 481개 불법·불량 제품에 대해 리콜명령을 내렸다. 4300여개 업체에 대해 불법·불량 제품 단속을 벌여 1140개 사업자에 대해 인증취소 등 행정조치를 취했다. 문제는 리콜명령이나 행정조치를 받은 일부 제품이 조치 이후에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지 않고 버젓이 유통돼 소비자 건강과 안전에 지속해서 위해를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행정조치를 따르지 않아 형사 고발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전체 418건 가운데 무려 132건에 기소유예가 내려졌고, 22건은 아예 혐의 없음으로 판결 났다. 그나마 179건에 벌금형이 부과되긴 했지만 그 가운데 70%가 100만원 이하 약식 벌금형이었다. 300만원이 넘는 벌금형은 단 7건에 불과했다.

이렇듯 국내 제품안전 리콜제도가 솜방망이 처벌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리콜명령을 받더라도 대다수 사업자는 ‘벌금 몇 푼 내고 말지’ 하는 식으로 리콜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 규제당국도 행정처분 이후엔 이를 강제할 이렇다 할 유효한 수단이 없어서 무늬만 리콜이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이 리콜명령을 이행할 때까지 과징금을 반복 부과하는 리콜 이행 강제금 제도를 운영하거나 심지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까지 도입해 리콜제도 실효성을 높이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 Consumer Product Safety Council)는 소비자 안전에 관한 한 거의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미국 내 최대 유아용품 제조업체 그라코(Graco)가 자사 카시트 제품에 내려진 리콜명령을 차일피일 미루다 1000만달러 벌금을 추징당한 사례는 미국 정부의 냉혹하리만큼 단호한 법 집행의 단면을 보여 줬다. 2009년 토요타나 지난해 폭스바겐 자동차 대량 리콜 사태는 제품안전이 선택이 아닌 기업경영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단순한 부주의나 여력이 없었다는 변명이 불법·불량 제품을 유통시키고 리콜조치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면제부가 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이 제조 유통시킨 불법 제품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과 이웃들이 불의의 안전사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리콜제도도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담보할 수 있도록 실효성과 구속력 있는 제도로 거듭나야 할 때다.

불법을 반복 자행하는 부도덕한 사업자를 소비자권력 이름으로 단죄할 수 있는 제도 장치가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 불법·불량제품 유통으로 얻은 부당한 이익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리콜 이행이 미진한 경우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실효성 있는 경제적 제재 조치 마련을 위해 지금이라도 정부·기업·소비자단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공론화 과정에 함께 나서야 할 때다.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장 aerock0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