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13> 시퀀스 디자인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13> 시퀀스 디자인

“ABC 과학부의 줄스 버그먼 기자입니다. 아폴로 13호에 폭발이 있었습니다. 현재 비행사들은 달착륙선으로 피신해 있다고 합니다.” 발사가 성공한 줄 알았다. 발사 파편에 동체가 찢어진다. 탱크가 폭발하면서 산소가 누출됐다. 밸브를 차단하면서 연료전지가 꺼진다. 전기가 차단되고 모선이 조종 불능에 빠진다.

전력이 부족했다. 조종에 필요한 기기를 모두 작동하려면 60암페어가 필요했다. 이러면 16시간밖에 버틸 수 없다. 12암페어에 맞춰야 했다. “그걸로는 진공청소기도 못 돌려.” 누군가 중얼거렸다.

12암페어로 조종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홍역으로 탑승 기회를 놓친 조종사 켄 매팅리가 호출된다.

“모든 것이 시퀀스에 있어(That`s all in the sequences). 필요 없는 것은 건너뛰어야 하지. 바른 순서로 계기를 켜야만 해.”

“먼저 유도장치를 켜고, 그다음 ECS와의 교신장치를 켜고, 낙하산을 펼 장치…. 젠장, 이 순서면 추진기를 가동할 전력이 모자라. 전력을 너무 많이 썼어. 다시 하자고. 순서를 다시 짜야 해.” 수없이 새 시퀀스를 시도한다.

“광학장치, 전원 차단, 히터, IMU(관성측정장치) 가동, 조명등, 이제 유도장치를 켜고 CMC(사령선 컴퓨터), 고도, IMU, 이제 CMC를 작동하겠다. 배터리는 살아 있나?” “네,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아요. 이제 모선을 살릴 수 있겠어요.”

주변을 둘러보자. 혁신이 넘쳐난다. 하지만 결코 쉬운 선택일 수 없다. 혁신은 고비용과 위험을 수반하는 투자다.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다. 아폴로 13호처럼 커피포트 9시간 돌릴 만한 전력으로 달을 한 바퀴 돌아 지구까지 돌아와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기업이 기술 찾기에서 시작했다. 쓸 만한 기술을 확인한 후 적용할 제품을 찾는다. 수요가 없으니 속수무책이다. 고객이 무얼 찾는지 먼저 보기로 했다. 프로세스 시작을 연구실에서 마케팅 부서로 옮긴다. 그러자 시장 따라가기, 속도가 중요해졌다. 일본 기업은 한 단계 더 나간다. 마케팅 부서가 수요를 찾으면 여기에 곧 연구센터와 생산부서가 참여하고, 그다음 부품공급업체가 붙는다. 계주를 럭비 게임으로 바꾼다. 학자들은 이 방식을 “제조성 디자인(design for manufacturability)”이라 부른다.

인시아드(INSEAD)의 카란 지로트라 교수와 세르게이 네테신 교수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의사결정 타이밍을 바꿔 보면 어떨까 제안한다. 의사결정을 늦추고, 순서를 다시 섞고, 쪼개 보자. 1970년대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예약정보로 요금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다. `반자동경영연구환경(SABRE)`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곧 산업표준이 된다. 가능한 최신 정보를 반영하도록 의사결정을 늦춘다. 카지노와 호텔로 유명한 시저스 엔터테인먼트는 예약을 받기 전에 얼마나 수지 맞는 고객인지부터 먼저 본다. “빈 객실이 없어서 죄송합니다”라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고, “공짜로 계시죠”라는 답을 들을 수도 있다.

결정의 순서를 바꾸거나 뒤섞는 방법도 있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기보다 해결한 사람에게 보상한다. 이노센티브(InnoCentive) 방식이다. 라이브옵스(LiveOps)란 회사는 콜센터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상담한 만큼 보상한다. 이른바 `클라우드 콜센터` 방식이다. 시설도 필요 없다. 채용 비용이나 훈련 과정도 줄인다. 상담 결과를 보고 평가하고, 그 수준에 맞춰 전화를 연결한다.

의사결정을 쪼개는 방법도 있다. 완벽한 사업계획서를 만들기보다 가설을 들고 시작해 본다. 시장이 있는지, 취향은 어떤지 모두 검증하고 실행하는 대신 이곳저곳에서 실험해 보고 가설을 조정해 나간다. 위험을 쪼개어 줄이는 방식이다.

우리 자신과 기업을 살펴보자. 과제를 나열하고 경중을 따져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시퀀스까지 따져 보지는 않는다.

“이 방법은 재미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른 기업이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혹시 성공과 실패 사이에 시퀀스라는 또 하나의 디멘션이 있는 것은 아닐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