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유리창 깨진 출연연

[데스크라인]유리창 깨진 출연연

지난 1969년 필립 짐바도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슬럼가에 자동차 두 대를 일주일 동안 방치했다. 한 대는 보닛을 열어 놓기만 했다. 다른 한 대는 창문을 조금 깨뜨려 놓았다. 결과는 극과 극이었다. 보닛만 열어 둔 차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창문이 깨진 차는 고철처럼 망가졌다. 심지어 타이어, 배터리 등 부품도 누군가 훔쳐 가고 없었다. 사소한 무질서가 엄청난 폐해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탄생했다.

1994년 뉴욕시장에 선출된 루돌프 줄리아니는 범죄를 줄이고자 이 이론을 적용했다. 치안 사각지대로 방치된 지하철에 낙서를 지우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청소원을 동원해 낙서를 지우고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낙서를 한 사람은 끝까지 추적해 단죄했다. 언론은 말도 안 되는 방법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범죄가 줄었다. 2년 뒤 범죄율은 50%까지 급감했다. 별것 아닌 변화가 불러온 연쇄 변화는 가위 혁명이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기술료 사용 규정을 지키지 않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기술료는 출연연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면서 받는 일종의 로열티다. 출연연 입장에서는 부수입이다. 정부는 결국 국민 세금으로 번 돈인 만큼 유용하지 못하도록 사용 규정을 정해 놓았다. 기술 사업화를 장려하거나 재투자에 초점을 맞췄다. 출연연 연구 성과가 연구소 안에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박근혜정부는 기술 사업화에 기술료 수입 10% 이상을 재투자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규정을 어긴 출연연이 전체 72%에 달했다. 재투자하지 않은 돈은 대부분 운영경비로 썼다. 사용처가 불분명한 기타 항목으로 잡은 출연연도 태반이었다.

전자신문이 문제를 지적하자 출연연 일각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라고 반응했다. 규정이 바뀐 지 2년밖에 안 돼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는 변명부터 살림살이가 꼭 정해진 대로 집행되느냐는 어거지도 등장했다. 지난해 출연연 기술료 수입은 1329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10%인 130억여원이 용도 외에 사용된 문젯거리다. 그것도 매년 암암리에 벌어졌다. 정말 대수롭지 않은 문제인가. 전자신문의 후속 취재에서는 기술료 수입 50% 이상을 연구자 보상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도 지난 5년 동안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정한 기술료 사용 규정이 그야말로 휴지조각인 셈이었다.

출연연은 매년 4조원대의 정부 예산을 쓴다. 그렇지만 기업에 연구개발(R&D) 주도권을 빼앗긴지는 오래됐다. 기초기술이든 응용기술이든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기술료 사용 규정을 어긴 것은 하나의 단면이다. `깨진 유리창`에 비유할 수 있다. 깨끗한 거리에는 담배꽁초를 버리지 못해도 쓰레기가 널린 거리에는 거리낌 없이 꽁초를 버리는 게 사람 심리다. 사소한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무질서가 창궐한다. 100억여원의 용도 외 사용을 묵인하면 4조원의 쓰임새도 주먹구구식이 될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출연연 선진화 방안이 제시됐지만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박근혜정부도 출연연 혁신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정작 깨진 유리창은 방치한 채 도색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장지영 성장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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