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세상을 삼키는 SW

[데스크칼럼]세상을 삼키는 SW

5년 전 이맘때다. 미국 유명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한 기고문이 미국 정보기술(IT) 업계에 화제가 됐다. 기고자는 1990년대 중반에 넷스케이프를 창업한 마크 앤더슨. 그는 브라우저의 시초인 모자이크를 개발한 실력파 개발자다. 앤더슨은 `소프트웨어(SW)가 세상을 삼키는 이유(Why Software is Eating The World)`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SW 세상이 왔다”고 선언했다.

당시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한 벤처투자가였다. 앤더슨은 기고에서 아마존, 넷플릭스, 스카이프, 구글을 거론하며 “가장 급성장하고 주목받는 기업은 모두 SW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또 월마트, 석유회사, 금융서비스, 미국 국방부가 SW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의 말처럼 SW는 빠른 속도로 세상을 삼켜 왔다. 자동차가 `달리는 SW`가 됐고, 스타벅스 등 여러 회사가 “우리는 IT 회사”라며 SW 파워를 강조한다.

경영은 고객 니즈와 원츠를 파악해 빠른 시간에 이를 해결, 고객 만족을 가져다주는 행위다. 스타벅스처럼 SW를 활용, 이를 잘한 회사는 `성장 열차`를 타며 승승장구한다. 스타벅스가 커피회사임에도 자랑하듯 IT회사라고 하는 이유다. 해외 경영 대가들도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이 이제 디지털 기업, 혁신 기업, SW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SW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기술이다.

세상에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으려면 SW 없인 안 된다.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차, 로봇, 드론, 인공지능(AI) 등 미래 유망 산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도 SW다. 다가올 4차 산업혁명도 SW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지난 22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세계에서 가장 스마트한 기업 50개사를 선정하면서 아마존을 1위로 뽑았다. 아마존을 1위로 선택한 이유로 MIT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물류회사지만 애플 `시리(Siri)`와 맞먹는 음성인식 기술 `알렉사`와 음성으로 작동하는 스피커 `에코`를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렉사`와 `에코는 AI를 적용한 SW 기술 결과물이다. SW가 전방위로 세상을 삼키고 있지만 우리나라 `SW 실력`은 별로다. 원천 기술, 고급 인력, 마케팅 등 모든 면이 취약하다. 세계 컴퓨팅 시장은 클라우드로 전환하면서 새 장이 열리고 있지만 세계에 명함을 내밀 기업이 없다.

국내 클라우드 시장은 아마존 등 외산 업체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이러다 예전의 닷컴 시절처럼 “외산 잔치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세계 수요가 연간 15억대나 되는 스마트폰 운용체계(OS)도 구글과 애플이 장악하고 있다. 두 회사의 점유율은 95%가 넘는다. 우리나라 OS는 낄 자리가 없다. SW는 특성상 결과보다 과정(프로세스)이 중요하다. 아웃풋(성과)이 나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문화와 인프라가 개방 및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위계질서를 중시하고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우리 문화와 안 맞는다. 그나마 알파고 충격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창의와 개방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다행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경영 석학 라피 아밋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석좌교수는 “한국의 대기업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리콘밸리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놨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학계, 정부 등 우리 모두 빨리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는 방향은 명확하다. 세상을 빠르게 삼키고 있는 SW다.

방은주 국제부장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