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 <63> `한국 해커 아버지`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유준상 원장은 “사이버보안은 창조경제의 핵심”이라면서 “정보보안 산업을 육성해 한국의 새로운 한류로 K-BOB을 수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유준상 원장은 “사이버보안은 창조경제의 핵심”이라면서 “정보보안 산업을 육성해 한국의 새로운 한류로 K-BOB을 수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의 행로(行路)는 반전(反轉)이다.

38살에 전남 보성에서 11대 국회에 진출해 14대까지 잘나가던 그는 15대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3년 동안 해외를 돌면서 3개국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귀국해 1997년 국민화합과 통합, 지역갈등 해소를 내걸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절치부심, 서울 광진구에서 정치 복귀를 시도했으나 두 번 낙선했다. 2004년 당선이 확실했으나 그해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고배를 마셨다. 정치는 마약과 같은 것. 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는 2010년 해커 양성 정보기술(IT) 교육원장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는 사명감이 IT 문외한인 그를 `해커 아버지`라는 미답(未踏)의 길을 걷게 했다.

그의 학구열과 도전정신은 남다르다. `영원한 청년`답게 뒤늦게 외국어 공부를 시작. 4개 국어를 구사한다. 만능 스포츠맨으로서 유도 5단에 권투, 축구, 배구, 스키, 테니스 등 못하는 운동이 없다. 요즘도 매일 운동을 한다.

유 원장을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한국정보기술연구원 강남교육센터에서 만났다. 감색 청바지에 주홍색 캐주얼 차림이었다. 사무실 직원들도 슬리퍼만 신지 말고 옷차림과 근무 형태를 자율화했다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약 2시간 동안 진행했다.

-정치인에서 IT 교육 기관장으로 변신한 이유가 궁금하다.

▲전남 보성에서 15대 공천을 받지 못해 불출마를 선언하고 미국, 일본, 중국의 대학에서 3년 반가량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 서울 광진구에서 16대와 17대 출마했다. 하지만 다 떨어졌다. 17대인 2004년에는 당선이 확실했으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낙선했다. 그 후 당에서 공천을 주지 않았다. 고심하다가 뭔가 국가 발전에 흔적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2010년 원장직을 맡았다.

IT 문외한인 그는 원장 취임 첫날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IT 관련 서적 3권을 구해 정독했다. 그러면서 IT 전문가들과 만나 의견을 들었다. 국내 최고 보안 전문가인 임종인 당시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청와대 안보특보 역임, 현 K-BOB 자문위원장)을 만나 한국이 IT 강국이지만 정보보호 분야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체계를 갖춘 정보보안 교육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임진왜란 이전에 율곡 이이 선생이 10만 양병을 주장한 것처럼 10만명의 정보보호 인력을 양성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세계 최초로 화이트 해커 양성 프로그램인 BOB(best of the best) 교육 과정을 도입한 이유다.

-처음에 어떻게 했나.

▲2010년 당시 정보보호 양성 예산은 미미했다. 예산 확보를 위해 발로 뛰었다. 관련 부처와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나 보안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해 보안 교육비로 10억원을 예산에 반영시켰다. 당시 예결위원장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이주영 현 새누리당 의원이다.

-화이트 해커 교육은 세계 처음인가.

▲그렇다. 세계가 우리 교육 프로그램에 주목한다. 미국 CNN, 프랑스 AFP, 영국 스카이뉴스 같은 유력 언론들이 교육 내용을 보도했다. 최근 우리 교육을 벤처마킹하기 위해 미국, 일본, 이란, 대만에서 관계자들이 교육원을 다녀갔다. 앞으로 정보보안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철학이 없으면 사이버전쟁 시대에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북한 해킹 기술 수준은 어는 정도로 보나.

▲북한의 사이버전 수준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이란에 이어 세계 5위다. 사이버테러 인력이 6000여명이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사이버전에 대비해 왔다. 정찰총국 산하 121국이 사이버 정보작전 업무를 담당한다. 이는 핵만큼 위험하다. 사이버테러 수법은 갈수록 지능화하고, 그 피해는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19대 국회에서 폐기된 `사이버테러방지법` 국회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현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컨트롤타워인데 법적 지위가 없다. 국가 이익을 놓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사이버보안 실패는 곧 국가안보 실패다. 미국 사이버정보공유법이나 영국의 사이버테러방지법과 같은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심하다.

▲사익(私益)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국가보다 정당, 정당보다 개인 이익을 우선한 결과다. 이런 사람을 선출한 유권자들도 책임이 크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실행해야 한다.

-그동안 배출한 졸업생은 몇 명인가.

▲1기부터 4기까지 모두 450명을 배출했다. 올해 5기는 140명을 선발했다. 1기 선발 때는 전문가를 찾지 못해 60명을 선발했다. 지금은 갈수록 지원자가 늘고 있다. 사이버전에서는 사람이 최고 무기다.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사이버국방학과도 모집 인원을 늘려야 한다.

-교육생 선발 기준과 경쟁률은 어느 정도인가.

▲올해 140명 선발에 1053명이 지원, 7.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 보안 영재다. 필기시험, 심층면접, 포트폴리오 심사를 한다.

-교육의 특징과 교육 내용은.

▲가장 큰 특징은 산업계 최고 전문가인 멘토들과 1대1 도제식 교육을 한다는 점이다. 교육센터는 24시간 개방한다. 교육은 3단계다. 방학기간인 7~8월에는 전공을 학습한다. 9~12월에는 프로젝트 중심으로 실무와 실습을 한다. 이후 2개월은 심층 과제를 수행한다. 전문 분야는 디지털 포렌식, 취약점 분석, 보안 컨설팅이다. 군 복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보보호 특기병 과정도 운영한다. 국내 최고 시설인 워룸(war room)도 마련했다.

-졸업생에게는 어떤 특전이 있나.

▲교육생 가운데 최고 인재 10명(BOB 10)을 선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인증서를 준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의 단기 해외연수와 1500만원 상당의 진로 지원금을 받는다. 또 창업을 준비해 BOB 그랑프리에 뽑히면 5000만원 상당의 지원금과 컨설팅, 사무실을 지원해 준다. 투자사와 연결도 해 준다. 이 밖에 수료생들에게 학업이나 취업, 군 복무 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지난해 5월에는 세계 최고 해킹 대회인 데프콘에서 한국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멘토단에는 어떤 분들이 참여하나.

▲현재 멘토단은 100여명이다. 이 분야 최고들이다. 세계 최초로 애플 제품을 해킹한 찰리 밀러와 세계 최고 해커의 한 명인 조지 하츠 등도 초빙해 특강을 한다.

-사이버전과 관련해 정부가 보완 또는 개선해야 할 법이나 제도는.

▲사이버보안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다. 사이버 공간에는 국경이 없다. 각국은 사이버 안보를 지키기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 유럽은 2001년 6월 사이버범죄 방지조약을 채택했다. 현재 47개국이 가입했다. 우리는 아직까지 가입하지 못했다. 국제공조 체계 구축을 위해 가입해야 한다. 미국의 2017년도 정보보안 예산은 올해 대비 35% 증액된 406억달러다. 연방정부에 최고보안담당자(CSO)직도 신설했다. 우리도 정부가 정보보안 예산을 늘려 정보보안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우리가 살 길은 보안 강국 구현이다. 보안 인재 양성으로 북한의 사이버 미사일 공격을 막고, 한류인 K팝처럼 K-BOB 같은 정보 기술을 수출해야 한다. 정부는 정책과 재정 지원은 하되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보안에 대한 학교 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정보보호의 중심은 사람이다. 인재를 길러야 한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를 조성하고, 창의력 강한 우수 인재들이 마음껏 꿈과 끼를 발현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두 가지를 하고 싶다. 하나는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같은 최고 인재 교육기관을 만드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통일이 되면 평양시장에 출마할 생각이다. 서울역에서 평양까지 뛰어가 평양시청 앞에서 시장 출마 선언을 할 생각이다. 이런 일이 국가에 대한 내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한다.

-창의력은 어떻게 해야 생기나.

▲창의력은 독서, 여행, 토론을 많이 해야 한다. `창조경제` 그러지만 책상에 맞아 계획서만 작성하면 성공할 수 없다.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

-젊은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사사키 후미오) `보이지 않는 전쟁`(셰인 해리스)이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포기는 곧 실패다`다. 누구나 위기와 만난다. 이때 좌절하고 포기하면 실패한 인생이다. 낙선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2007년 마라톤을 시작해 42.195㎞를 완주했다. 2012년 10월에는 55일 동안 633㎞를 달리는 국토 대종주를 완주했다.

유 원장은 보성 양조장집 9남매 가운데 둘째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건국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11대 국회에 진출해 14대까지 내리 4선을 기록하면서 국회경제과학위원장을 지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과학기술자문위원회`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다. 현재 K-BOB 시큐리티포럼 이사장, 대한롤러스케이트 연맹회장, 21세기 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일본 와세다대 아태연구센터 국제자문위원,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 국군사이버사령부 자문위원,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 원장은 이달 중순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보안 콘퍼런스인 RSA에서 교육 부문 공로상을 받는다. 또 8월 중순에는 중국에서 열리는 ISC 콘퍼런스에 키노트 연사로 초청받아 출국할 계획이다. `영원한 청년` 유 원장의 정보보안 강국을 향한 무한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