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69> 보안업계 1호 여성 CEO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장

[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69> 보안업계 1호 여성 CEO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장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장은 보안업계 1호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암호학 전공 여학생 1호, 한국인터넷진흥원 장학생 1호였다. 어릴 때부터 소녀들이 즐겨 보는 순정만화 대신 로봇만화를 읽었다. 광운대 수학과 졸업 후 KAIST 대학원에서 암호학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0년 대학원 재학 중에 KAIST 선후배 4명과 보안업체 테르텐을 창업했다. 올해로 창업 16주년을 맞았다. 협회장과 기업 CEO, 정부 위원회 등 1인 다역(多役)을 하는 이 회장을 4일 오후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 테르텐 사무실에서 만났다.

-여성벤처 기업 수는 현재 얼마인가.

▲현재 1100개 정도다. 지난해 11월 1000개를 돌파했다. 눈사람 만들 때 연탄재가 있으면 빨리 만들 수 있지 않나. 현재 우리나라 경제 활동 인구 40%가 여성이다. 그런데 음식업과 중소소매업 종사자가 다수다. 그러다 보니 부가가치가 낮다. 여성벤처 기업은 연 매출이 40억~50억원에 이른다. 여성들이 고부가가치 경제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벤처 기업 1000개 돌파는 이런 모멘텀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여성벤처 기업의 업종 분포는.

▲제조업이 전체의 60%다. 정보기술(IT) 20%와 나머지 20%는 컨설팅, 교육 분야다.

-IT 업종 비중이 예상 외로 낮다.

▲현재는 낮지만 앞으로는 높아질 것이다. 지금 여성벤처인이 대학에 다닐 때는 이공계 진학률이 낮았다. 요즘은 여학생의 이공계 진학률이 높다. 앞으로는 변할 것이다.

[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69> 보안업계 1호 여성 CEO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장

-올해 협회의 역점 사업은.

▲임기 2년차로, 올해 사무실을 기술창업 시설인 팁스(tips)타운으로 이전했다. 그곳에 여성특화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를 마련, 지난달 27일 문을 열었다. 센터에는 사무공간과 회의실, 상담실을 비롯해 다양한 공동시설을 갖췄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마케팅, 멘토링, 경영컨설팅 등 창업까지 토털 서비스를 한다. 20개사를 입주시킬 예정이다. 1차로 5개사가 입주했다. 협회 산하기구로 청년미래성장위원회가 있다. 20~30대 여성 창업 예정자와 갓 창업한 CEO 모임이다. 여성벤처 성장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100개사를 넘어섰다.

-여성벤처 펀드 조성에는 차질이 없는가.

▲2014년 펀드기술 투자금은 100억원이었다. 수림창업투자가 지난해 145억원, 올해 캐피털 투자로 145억원을 조성한다. 아직은 펀드 환경이 열악하다. 투자심사 역에 여성이 없어 여성벤처 이해도가 낮은 점도 한 원인이다. 여성 벤처인에게 투자하는 펀드 누적액은 350억원에 불과하다. 이를 2017년까지 5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여성벤처에만 투자하고 사후 관리를 잘해서 펀드조성 사업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국내 최초 여성 보안업체 CEO다. 이 분야에 뛰어든 계기는.

▲나는 어릴 때 소녀들이 즐겨 보는 순정만화는 읽지 않았다. 그 대신 로봇만화를 애독했다. 그게 더 재미있었다. 원래 암호 하면 수사나 첩보 등 특정 분야에서 사용하던 용어였다. 그게 일반으로 나왔다. 암호학을 하고 싶었다. 대학원 진학 당시 암호학은 발아기에 해당했다. 여학생으로는 내가 유일했다. 초창기다 보니 가르치는 교수와 배우는 학생이 함께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KAIST 선후배 4명과 2000년에 학생 창업을 했다. 회사 경험은 전무였다. 너무나 막막했다.

이 회장은 한국여성벤처협회 수석부회장을 지내고 한국무역협회부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원회 정책조정전문위원, 한국정보보호학회 부회장,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무역의 날 국무총리 표창과 여성기업인상 인재경영상 등을 받았다.

-여성이어서 사업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막상 사업을 시작하고 보니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비즈니스할 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당시 어른들이 나한테 “오해받을 수 있으니 호텔 근처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지만 당시는 그게 현실이었다.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 없다 보니 이른바 갑을(甲乙) 관계에서 갑질과 대기업 관행을 전혀 몰랐다. 여학생 창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보안업계에 여성이 없었다. 학연이나 지연 같은 데 기댈 수도 없었다. 당시 기업 CEO들은 나와 나이 차이가 25살 정도였다. 젊은 여성이 만나자고 하면 낯설다며 만남 자체를 꺼렸고, 그런 대기업 CEO가 있었다. 인맥 기반이 없는 데다 희소성의 불편함으로 피로도가 높았다. 그게 힘들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당당한 사업 파트너로 인정받아 가슴 벅차다. 후배 여성 벤처 기업인들이 혹시나 나 같은 역경을 겪을까 걱정이다.

-여성이 CEO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업도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학교는 시험 싸움이다. 좋은 성적을 받으려면 시험을 잘 치러야 한다. 그러려면 성실과 노력은 기본이다. 사업도 초심(初心)을 잃지 말고 자기만의 색깔로 성실하게 노력해야 성공한다.

[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69> 보안업계 1호 여성 CEO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장

-테르텐(Tertuen)은 누가 작명했나.

▲내가 작명했다. 티베트 관련 서적을 읽다가 마음에 들어 결정했다. 테르텐은 `인류를 구원할 보물을 찾는 사람들`이란 의미다. 보물은 `인류에 도움을 주는 IT`를 뜻한다.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가 되자는 뜻이다.

-올해 목표는.

▲테르텐 사업은 세 가지 분야다. 첫째는 영상과 음원 등 멀티미디어 포맷이다. 영상과 음원 보호 및 관련 기술을 갖추고 있다. 둘째는 스마트폰 출시 PMP 기술이다. 모듈 솔루션이다. 동영상 보호 모듈을 탑재해 출시한다. 단말 보호 부문에서 독보하는 독자 기술력이다. 셋째는 화면 유출 방지 솔루션이다. 국내 1위다. 상반기에 국내 굴지 기업의 공급계약권을 획득했다. 올해 말까지 국내 7개 그룹사와 화면 보안 계약을 체결한다는 계획이다. 목표는 이 분야에서 독보하는 기술력을 갖춘 1위 기업이 되는 것이다.

-북한의 해킹 수준은.

▲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사이버 인력만 6000여명이고, 1만명으로 늘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사이버전투부대도 창설하고, 러시아와 유럽 등지로 유학을 보내 사이버 전사를 양성한다고 한다. 우리도 사이버 전문 인력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

-사이버 테러나 공격으로 인한 국내 연간 피해 규모는 얼마로 추정하는가.

▲지난 10년 동안 매년 평균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규모가 1조7000억원이라고 한다. 이건 정부 자료다. 10년치 평균 금액이다. 그런데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피해 규모는 3조6000억원에 이른다. 자연재해보다 두 배 많다. 강물이 범람하고 산이 무너져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온통 난리가 난다. 그런데 사이버 테러로 인한 피해에 대해선 너무 무덤덤하다. 앞으로 사이버 테러로 인한 피해 규모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사전 대비책을 서둘러서 마련해야 한다.

-사이버 보안 강국을 구현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가 보안 가이드라인을 최소화해야 한다. 보안은 복잡도 싸움이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걸 관여하면 보안 시장은 가이드라인 시장으로 변질한다. 물론 모든 가이드라인이 다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정부 관여는 최소화하고 기업 자율로 보안 대책을 강구하도록 자율권을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동네에 자물쇠를 설치하는데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같은 제품을 사용했다고 가정하자. 한 집 자물쇠만 열면 모든 동네 보안에 구멍이 뚫린 것이나 같다. 개인정보보호법만 해도 정부가 지나치게 가이드라인을 세세하게 제시한다. 과거에는 정부 기관에 최고 보안 전문가들이 있어서 그런 역할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민간에도 최고 전문가가 많다. 시스템의 유니폼화는 사이버전에서 취약하다.

-기업들은 정보 보호에 얼마를 투자하나.

▲기업의 IT 예산에서 차지하는 보안보호 분야는 2.7%에 불과하다. 미국은 40%, 영국은 46%다. 우리나라 보안 예산이 낮은 것은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기업에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는 있어도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는 없다. 아직도 CIO가 겸직하고 있다.

[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69> 보안업계 1호 여성 CEO 이영 한국여성벤처협회장

-개인정보나 해킹을 막는 생활 수칙은.

▲기본을 지켜야 한다. 각종 소프트웨어(SW)는 정품을 사용하고, 인터넷 보안 패치를 설치해야 한다. 여전히 SW는 공짜라는 심리가 있다. 제값 주고 정품 SW를 구입해야 한다. 외산 제품은 가격이 비싼 데다 유지보수비도 국산 제품보다 월등히 높다. 국산을 사용해야 우리 SW 품질도 좋아지고 가격도 내릴 것이다.

-개선해야 할 보안 관련 법이나 제도는.

▲기존의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포지티브 규제를 하면 창의력이 없어진다.

-좌우명과 취미는.

▲사업이 어려울 때 선배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을 흥하게 하는 건 운이고 기업을 망하게 하는 건 실력이다. 운이 올 때까지 실력으로 기업을 지켜라.` 이후 힘들 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이 말을 되새긴다. 취미는 고전 읽기다. `노자`를 즐겨 읽는다. 몇 년 전 사서삼경 조찬 모임에도 나갔다. 취미는 명상, 선(禪) 수련이다. 태극권도 5년 동안 수련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사진=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