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A 칼럼] 오래된 신직업

[SBA 칼럼] 오래된 신직업

문경일 서울산업진흥원 신직업리서치센터장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신직업리서치센터를 맡고 있다고 대답하면 ‘도대체 신직업이 뭔가요?’하고 되물어온다. 도대체 ‘신’직업이 가능한지? 뭐든지 이름만 붙이면 ‘신직업’이 되는 게 아니냐는 약간의 김빠진 반응들도 있다. 직업이라는 것을 고정불변하다고 생각하거나, 하는 일, 곧 직무와 동일시하면서 생겨나는 오해들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인간은 필요없다’라는 도발적 제목을 단 책도 출간되었다. 정말로 그러한가? 걱정과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잠깐 딴 생각을 해보자.

배(ship)는 어떤가? 대서양을 건너 북미대륙에 도착한 컬럼버스의 기함인 ‘산타마리아호’는 약 18m길이의 범선이며, 선원은 4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초대형 컨테이너선 중 하나인 18000TEU급의 길이가 400m인 ‘머스크 맥키니 몰러’의 선원은 겨우 22명이다. 범선을 이용한 대항해시대 때 급증한 선원들의 일자리는 증기기관과 엔진으로 인해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일자리가 사라졌다거나 ‘인간이 필요없게 되었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또한 엔진정비나 통신 등 보다 고부가가치의 일자리(해기사)보다, 노 젓고 돛줄을 푸는 일자리(선원)를 계속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없어지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는 무엇이 유용하고 필요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인류문명은 필요성을 몰랐던 자원을 꼭 필요한 자원으로 바꾸고, 기존의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노동과 직업이 요구되었고, 인간은 환경변화에 적절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해왔다.
즉, 에너지와 관련하여 흔히 회자되는 말처럼 ‘돌이 부족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돌을 깎는 일이 필요 없어지고,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생겨난 것처럼 인류 문명의 역사는 곧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가고 넓혀가는 과정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결국 직업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인간은 매번 새로운 기술발전과 상황변화에 대응하면서 새로운 능력과 역량을 키워왔으며, 보다 풍족한 삶을 위하여 새로운 직업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미래지향적으로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 등에 의해 인간이 정말로 필요없게 될 것이다라는 식의 접근이 갖는 의미의 이면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흡사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들의 러다이트운동을 단순히 기계파괴운동이라고만 생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노동자들은 방직기계 때문에 자신의 삶이 더 힘들어지고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으며, 노동에 비해 부족한 이윤의 배분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래서 그들은 기계 자체는 생산성을 높여주지만, 그 혜택은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오히려 쉬지 않는 기계에 맞추어 노동시간만이 길어질 뿐이었다. 높아지는 생산성을 우리가 어떻게 향유할 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단순히 기계를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을 파괴하게 될 지도 모른다.

신직업은 지금 이 순간 생겨나는 ‘새로운’ 직업이란 의미가 아니라, 발전하는 인류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의 역할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사시대 이래로 인류가 계속 만들어 온 ‘오래된’ 신직업들이 지금 현재 우리의 문명을 만든 밑바탕이다.